[소설]여자의 사랑(59)

  • 입력 1997년 3월 5일 08시 58분


가을이 깊어지는 동안〈14〉 『그럼 내일 봐』 『그래요, 내일』 그렇게 인사를 하고 헤어졌는데 다음날 그녀는 학교에 나가지 못했다. 독립군과 헤어져 집으로 들어올 때부터 이상하게 온 몸에 열이 나기 시작했다. 자리에 누워서도 처음엔 스스로 이마를 짚어보며 그의 입술 때문인가, 하고 생각했다. 그의 입술로 아직도 내 가슴이 뜨겁고, 마음이 뜨거워 몸조차 뜨거워지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닌 것 같았다. 밤에 두번 그녀는 잠에서 깨어났다. 첫번째는 그냥 눈만 뜬 채 머리를 짚어보았고, 새벽에 두번째 깨어났을 땐 저녁 때보다 열이 더 올라 머리 속까지 휑하니 비며 흔들리는 기분이었다. 그러다 아침이 되자 목까지 부어오른 듯한 느낌이었다. 아빠 엄마한테 이제 집안에 하나 남은 딸이 아파하는 모습을 보이기 싫어 억지로 일어나긴 했지만 온몸이 열로 들끓었다. 욕실에 들어가 거울을 보자 실제로 목 왼쪽이 오른쪽과 뚜렷하게 구분할 수 있을 만큼 부어올라 있었다. 침을 삼키는 것조차 가시를 삼키는 것처럼 목이 따끔거렸다. 수업은 점심 시간이 지난 바로 다음에 있었다. 어제 저녁 집으로 들어올 때의 생각은 오전에 수업이 없지만 일찍 나갈 생각이었다. 그런데 나갈 수가 없었다. 『너, 어디 아프니?』 아빠가 회사를 나간 다음 아침 식사 시간에 엄마가 물었다. 『아뇨』 대답은 그렇게 했지만 그 짧은 대답조차 목소리가 굵게 나오고 말았다. 『아냐. 너 어디 아픈가보다』 엄마들의 얘기는 한결같다. 아프다면 아픈 원인을 바로 짚어내지 못하고 거기에 그동안 쌓였던 자식들에 대한 불만도 함께 섞어넣는다. 『그것봐라. 매일 그렇게 늦게 다니더니』 그러나 실제 늦게 다닌 것도 없었다. 다른 사람과 함께였다면 몰라도 독립군은 그러지 않았다. 그는 기숙사가 정하고 있는 열시 입실시간을 거의 어긴 적이 없었다. 꼭 그래야 할 강제조항은 아니지만 그런 일로까지 굳이 남의 눈총에 나고 싶지는 않다고 했다. 그렇다고 그가 그녀를 만나는 날마다 밤 열시가 되어서야 기숙사로 들어가는가 하면, 오히려 그보다 늘 세 시간씩 빠를 때가 많았다. 『난 거기서 밥을 먹어야 하거든』 <글:이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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