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런던에서 로열 셰익스피어 극단(RSC)의 셰익스피어 연극을 보는 기회를 갖게 되었다. 96년12월 레퍼토리는 「맥베스」 「실수연발」 「한 여름 밤의 꿈」 그리고 「뜻대로 하세요」 4편이었다. 그러나 RSC가 셰익스피어 연극만 하는 것은 아니다. 몰리에르의 「재치를 뽐내는 아가씨들」, 체호프의 「벚꽃동산」, 그리고 영국의 현대 창작극들이 나란히 선을 보인다. 이점에서 RSC는 영국연극을 대표하는 극단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RSC는 1961년 셰익스피어 고향 스트랫퍼드 어폰 에이번에서 공연을 시작했고 런던에서는 바비칸센터 내 바비칸극장을 전용극장으로 갖추고 있다.
1996년 겨울에 펼쳐진 셰익스피어 연극은 여전히 4백년 전의 공연 형식을 고집하고 있는 듯이 보였다. 연기자들은 배우라기보다 움직이는 교과서처럼 느껴졌다. 정확한 스피치, 저음과 고음을 건반 두드리듯이 표현해내는 폭넓은 음역, 자로 잰듯한 워킹과 무대 동작, 조명 변화도 거의 없었고 음악의 사용도 자제되었다.
내가 바비칸극장에서 본 셰익스피어의 코미디 「뜻대로 하세요」는 전혀 우습지 않았고 볼거리로서의 재미도 없었다. 특히 연출이 독자성을 표현할 여지가 없었다. 연출의 역할은 무대와 배우를 교통 정리하는 선에서 그치는 듯했다. 꽉 들어찬 관객들은 간간이 조용하게 웃었고 연극이 끝나자 차분하게 네번쯤 앙코르 박수를 치고 나갔다.
그러나 볼거리로서의 재미를 느끼지는 못했어도 연극적 재미는 만끽한 공연이었다. 배우들의 말은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는 데도 불구하고 높게 낮게 빠르게 부드럽게 율격을 타면서 내 정서를 이끌어갔다. 배우들의 동작 역시 무엇을 표현하고 있으며 어떤 정서를 품고 연기하는지를 느끼게 해 주었다.
의미를 따라가려는 관객들은 어쩌면 RSC의 셰익스피어 연극을 보면 실망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연극을 극장속의 총체적 삶의 양식으로 이해하는 관객들에게 RSC의 셰익스피어극은 연극을 이해하는 모범이 되어 줄 것이다. 이와 함께 영국 연극인과 관객들이 셰익스피어를 자신들의 자부심으로 여기면서도 우상화하지는 않는다는 것을 발견하기도 했다. 작품 안내 책자에는 「뜻대로 하세요」가 강력한 극적 모티브가 없는 단순 구조라는 것, 극의 전개도 평면적이고 등장인물들의 성격에 당위성이 결여 되어 있다는 것, 줄거리 자체가 셰익스피어의 창작이라기 보다 초서의 「캔터베리 이야기」중 일부를 당시 상업적 작가가 차용한 소설을 원작으로 하여 구성되었다는 것, 작품 제목도 다분히 상업적 목적으로 붙여졌다는 것 등 온통 작품에 대한 비판 일색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이 꾸준히 공연되고 관객의 사랑을 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많은 결함에도 불구하고 다양한 인간 군상을 제시하면서 사랑과 화해의 결말로 이끌어낸 셰익스피어의 휴매니티, 그리고 셰익스피어 작품이라면 어떤 것이라도 자신들의 문화유산으로 살려내려는 RSC의 의지, 영국 관객들의 셰익스피어에 대한 절대적 신뢰의 결과물이 아닌가 여겨진다.―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