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정치음모설이 던진 파문

  • 입력 1997년 2월 11일 20시 17분


신한국당 金德龍(김덕룡)의원이 한보비리의혹에 대한 검찰의 수사방향과 관련하여 제기한 정치음모설은 그냥 넘길 일이 아니다. 김의원의 말이 사실이라면 매우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검찰수사내용의 일부 언론에의 유출이나 수사방향에 의문이 있다는 그의 주장은 여권내부의 갈등과 세력다툼에서 비롯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그러나 음모설은 검찰수사의 독립성과 현정부의 국정장악 능력에 큰 물음표를 던지고 있다. 한보부도사건이 터진 이후 20여일 동안 검찰수사과정에 매우 비정상적인 현상이 두 차례나 있었다. 신한국당 洪仁吉(홍인길) 국민회의 權魯甲(권노갑)의원의 한보연루사실이 특정신문에 미리 보도된 뒤에 검찰이 이들을 소환한 것이 그 첫째다. 둘째는 김의원 등의 한보자금수수설이 또 같은 신문에 보도된 뒤 정치음모설의 파문까지 일고 있다. 물론 일부 신문이 검찰수사결과를 빠르게 보도할 수는 있다. 그렇더라도 청와대당국자가 검찰의 수사방향에 대해 언급함으로써 실제 누가 수사를 하는지 알 수 없게 하고 검찰이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는 것은 수사의 정도(正道)가 아니다. 청와대가 검찰수사내용의 사전유출 경위를 조사토록 검찰에 지시했다는 보도도 있는 만큼 우선 청와대는 더 이상 잡음을 일으키지 않도록 해야 할 일이다. 한보사건의 핵심은 누가 수조원의 은행대출을 가능토록 외압을 넣었는가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은행을 손아귀에 쥐고있는 재정경제원 은행감독원 청와대경제수석과 한보의 철강산업진입을 허용한 정부부처에 대한 검찰수사가 있어야 마땅하다. 이런 핵심문제에 대한 수사를 하지 않음으로써 검찰이 뿌리캐기와 가지치기를 혼동하여 한보수사가 빗나가고 있다는 비난을 받고 있다. 임기 1년을 남겨두고 최대의 정치적 위기를 맞은 金泳三(김영삼)대통령의 국정장악능력이 현저하게 떨어졌기 때문에 이런 음모설까지 대두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당진제철소 1단계 준공식 때 대통령참석을 누가 권유했는가 하는 시비도 말이 안된다. 김대통령은 세 차례 참석권유를 받았으나 불참했기에 다행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도 한보의혹의 심각성을 제대로 인식못한 것이다. 본란은 한보의혹의 핵심은 은행에 외압을 행사한 실체를 캐내는 것임을 거듭 주장해 왔다. 그러나 그와는 별도로 한보의 검은 돈을 받은 정치인도 그에 상응한 책임을 져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본질문제와 부차적(副次的)문제는 구분되어야 한다. 외압의 실체를 벗기려는 노력은 없이 돈받은 정치인의 명단이 언론에 미리 공개돼 부차적인 문제에만 관심이 쏠린다면 한보의혹은 캐내기 어렵다. 음모설이 제기된 것은 검찰과 청와대 여당 모두를 겨냥한 것으로 판단된다. 음모설이 계속 나돈다면 나라꼴은 물론 정부의 공신력과 공권력 도덕성에 치명적인 상처를 줄 것이다. 그 진위여부를 밝혀야 할 책임도 정부에 있다. 검찰은 한보의혹의 본질과 핵심이 어디에 있는지를 직시하고 똑바로 수사를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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