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여자의 사랑(9)

  • 입력 1997년 1월 9일 20시 49분


첫사랑〈9〉 가슴의 꽃판을 중심으로 위로 솟아 오르고, 또 아래로 흐르는 그 각도의 어느 만큼이 가장 이상적인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옆 모습을 등신대로 찍은 비너스의 가슴과 이제 열아홉 살이 된 여자 아이의 가슴은 서로 그렇게 틀리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똑같지도 않았습니다. 거울엔 조금씩 뿌옇게 우유빛으로 수증기가 끼기 시작하고, 그 수증기 한가운데 루즈로 그린 여자 아이의 가슴 옆 그림이 있고, 또 그 그림을 바라보는 여자 아이의 모습이 보일듯 말듯 수증기에 가린 거울 속에 비치고. 정말 처음엔 가슴만 그렇게 그려볼 생각이었습니다. 그러다 물을 끼얹어 거울의 수증기를 걷어내고, 먼저 그린 그림을 지우고, 이번엔 거울과 정면으로 바짝 붙어서서 앞 모습을 그려보았습니다. 오른쪽 목선과 어깨 가슴 허리선을 그릴 땐 오른 손에 루즈를 잡았습니다. 아마 알게 모르게 이미 서너 발 호기심의 계단을 밟고 올라갔다는 이야기겠지요. 몸의 윤곽만 그렇게 그린 것이 아니라 가슴 꽃판의 정확한 자리와 거울에 비친 잘록한 허리 한가운데의 배꼽과 그리고 그렇게 그린 배꼽 아래 보다 은밀한 그곳의 부드러운 숲까지도 거울에 비친 모습을 따라 저도 모르게 그대로 루즈를 옮겨갔다는 것은 말이죠. 그런데 제가 숲이라고, 다른 은유 없이 바로 그렇게 말해버리고 말았군요. 그때 열아홉 살된 여자 아이의 가슴과 또 거울에 비친 그 아이의 몸을 말하면서. 숲이라고 말한 그 부분을 지우고 다시 쓸까요? 부끄럽긴 하지만 가슴이 작은 한 여자 아이가 이제 가슴이 작지 않은 또 한 사람의 성숙한 여자로 조금씩 조금씩 자라가고, 변해가는 모습으로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그날의 은밀했던 호기심과 그 호기심의 계단을 밟고 오를 때 스스로도 모르게 조금씩 달아올랐던 아주 묘한 감정의 흔들림도 말입니다. 사실 그 감정의 흔들림에 대해 조금 더 이야기하고 싶은 부분이 없는 건 아닙니다. 비록 거울 속의 모습이긴 하지만, 은유없이 바로 말한 그 숲을 그릴 때, 그 숲의 부드러움에 가 닿아 있는 것이 아마 다른 것이었다면 그런 묘한 감정까지는 일지 않았을 것입니다. 다만 루즈였기에, 그것이 색연필이거나 다른 필기구가 아닌 루즈였기에, 그것을 이제까지 늘 예사로 봐 왔던 루즈의 모습으로가 아니라 열아홉 살의 여자 아이가 거기에서 다른 무엇을 연상했다는 것이지요. 망측하게도…. <글 : 이 순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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