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생각 저생각]비행기안에서 있었던 일

  • 입력 1996년 12월 29일 20시 56분


나는 주장이 강한 편이 아니라고 자부한다. 다만 비행기 탈 때 창가 자리를 고집하는 것만은 예외다. 복도좌석에 앉으면 옆사람이 드나들 때 귀찮기 때문이며 방해받지 않고 잠자거나 책을 보다가 창밖을 내다볼 수 있는 이점이 창가 자리에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얼마전 해외여행때 애써 예약한 나의 창가 자리에 어떤 젊은 여인이 앉아 있기에 자리를 비켜달라고 했더니 그녀는 머뭇거리면서 그대로 눌러앉아 있었다. 그때 스튜어디스가 다가오더니 그녀가 창가 자리를 원하니 나더러 양보하라는 것이었다. 마치 내가 예쁜 여자승객에게 당연히 자리를 양보할 의무라도 있다는 표정을 지으면서…. 나는 굳이 자리를 바꾸어달라면 양보는 하겠지만 따질 것은 따져야겠다고 스튜어디스를 나무랐다. 지정좌석제는 왜 있는 거냐, 자리를 바꿀 필요가 있을 때에도 승객을 일단 지정좌석에 앉혀놓고 양보의사를 남이 안듣게 조용히 정중하게 타진했어야 하는 것 아니냐, 항공회사도 고객의 CS를 최대한 고려해야 하는 서비스업이 아닌가라고. 여인승객은 자기의 젊음과 미모를 무기로 무리수를 두었을 터이고(이전에도 그런 수법이 쉽사리 통했겠지) 스튜어디스는 나름대로 남자가 자리쯤 순순히, 그리고 관대하게 양보해줄 줄 알았으리라. 하나 말이 안된다. 도리도 예의도 아니라고 생각했다. 어쨌든 창가는 자리를 선점한 그 여인이 눌러앉고 나는 복도자리로 밀려나와 앉게 되고 말았다. 처음에는 부당한 이 처사에 대한 울분을 삭이며 언짢았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나만 참았으면 아무일 없었을텐데, 하는 자괴감에 사로잡히게 되었다. 다른 승객들에게 나만 옹졸한 남자로 인지되는 것도 억울한데 내 직장에까지도 나쁜 인상을 심어주게 되면 어쩌나 걱정되었다. 군말없이 쾌히 양보해주었으면 그 젊은 여인과 정다운 대담이라도 나누며 지루하지 않은 여행을 할수 있었을텐데…. 아무튼 뒷맛이 개운치 않은 기분나쁜 여행이었다. 누구 잘못이었을까. 홍 세 표<한미은행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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