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하며 생각하며]「베네치아」 쇠락의 교훈

  • 입력 1996년 11월 21일 20시 15분


요즘 이탈리아 북부 해안도시 베네치아의 역사에 관심이 많이 생겼다. 여행을 다녀온 사람들도 많아 우리에겐 낯설지 않은 곳이지만 사실 그 역사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본 사람은 많지 않은 것 같다. 베네치아는 7세기초 야만족의 침입을 피해 바닷가 개펄에 세워진 도시다. 중세암흑으로부터 유럽을 구원한 르네상스시대의 문화중심지였고 10세기 경에는 10만명도 안되는 인구로 지중해 해상권을 석권했다. 중국대륙 기행기 동방견문록(東方見聞錄)의 저자 마르코폴로 역시 베네치아 상인이었다. ▼ 변화-도전 거부땐 도태 ▼ 산마르코 광장을 둘러싸고 있는 원수궁전이나 성당에는 아직 전성기때의 흔적이 남아있다. 바다를 무대로 중개무역을 하면서 프랑스 스페인 터키와 같은 대국과 어깨를 견주었던 베네치아 번영의 비결은 무엇일까. 바로 험난한 바다에 도전해 유럽최고의 항해사로 이름을 날렸던 대다수 시민들과 근검절약 정신으로 국론통일을 위해 힘썼던 지배층과의 조화였다. 그러나 16세기에 접어들면서 사정이 달라졌다. 네덜란드와 영국을 비롯한 신흥 해양국가들이 베네치아가 장악하고 있던 지중해를 벗어나 인도양과 대서양으로 향하는 신항로를 개척했다. 이들이 질좋은 동양 상품을 저가에 공급하게 되자 베네치아는 급격히 쇠락의 길로 접어든 것이다. 베네치아의 몰락은 지중해 무역에서 얻은 이익에 집착, 성공에 안주하는 순간부터 예정돼 있었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2년전 미국의 초우량 기업들을 방문했을 때도 똑같은 점을 느꼈다. 변화하지 않고 도전하지 않는 기업들은 결국 망하고 만다는 교훈을 이번에 베네치아 역사를 통해서 다시 실감했다. 신한은행은 지난1월 「대경쟁시대에 배우는 로마흥망의 교훈」이라는 주제로 조그만 도시국가였던 로마가 주변국과의 치열한 경쟁에서 승리해 세계제국으로 발전할 수 있었던 「성공의 원리」를 뽑아내 은행경영에 대입시킴으로써 다소 성과를 거뒀다. 변화는 기회이며 새로운 가능성을 의미한다. 역사는 역시 미래를 내다볼 수 있는 혜안을 주는 진리의 보고다. 여느해보다 이른 첫눈 소식이다. 한해를 정리해볼 때다. 올해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 원년이라 할 수 있다. 이제 국내 은행들은 엄청난 경쟁시대의 파도를 타게된다. 전쟁과도 같은 경쟁이리라. 경쟁에 대한 대비를 이야기하다보면 야구경기가 떠오른다. 같은 편 투수의 구질은 물론 상대편 타자의 타법도 잘 아는 한 외야수가 있다. 그는 타석에 들어선 타자를 보면서 자기가 설 자리를 고른다. 잘 맞은 공은 그의 글러브로 날아들고 관중들은 그러나 그리 환호하지 않는다. 또 다른 외야수는 그저 한 자리를 지킨다. 공을 보고 마구 뛰어가면 어느 때는 손이 짧을 때도 있다. 어느 때는 아슬아슬하게 공을 잡아내면 관중들은 미기상(美技賞)감이라며 외쳐댄다. ▼「경제전쟁」 전략 세워야 ▼ 둘 중 진짜로 상을 받을 수비수는 누구일까. 관리자 입장에서는 이름도 공도 없는 그 수비수가 좋다. 막상 플레이는 화려하지 않았더라도 철저한 준비로 상대방의 공세를 꺾어버린 그에게 상을 주고 싶다. 무지명 무용공(無智名 無勇功)이라고, 「미리미리 잘 준비하면」 오히려 슬기로운 이름도 없고 용맹스런 공(功)도 없다는 말처럼 박수도 많이 받지 못한 그에게. 내년은 도전의 원년이기도 하지만 우리가 무한한 가능성의 바다를 향해 본격 대항해를 시작하는 첫해가 될 것이다. 羅 應 燦 <신한은행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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