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노보드銀’ 김상겸 “가장 운 좋은 날은 아내를 만난 날”

  • 동아일보
  • 입력 2026년 2월 9일 17시 48분


출처 김상겸 인스타그램
출처 김상겸 인스타그램

“아내를 만나 결혼한 게 가장 운이 좋은 일이다.”

‘한국 스노보드 맏형’ 김상겸(37)은 8일 열린 2026 밀라노-코르티나담페초 겨울올림픽 남자 스노보드 평행대회전에서 ‘깜짝 은메달’을 차지했다. 이번 대회 대한민국 선수단의 첫 메달이자 한국 올림픽 역사상 400번째 메달이었다.

37살의 무명 선수가 이뤄낸 기적 같은 메달에 이재명 대통령도 “네 번째 도전만에 마침내 올림픽 시상대에 올랐다”며 “대한민국 선수단 모두에게 큰 용기와 자신감을 불어 넣어줄 것이다. 오늘 하루, 승리의 기쁨을 마음껏 누리시길 기원한다”고 축하했다.

취재진으로부터 “오늘이 인생에서 가장 운이 좋은 날이냐”는 질문에 그는 고개를 저었다. 그가 떠올린 사람은 다름 아닌 아내 박한솔 씨(31)였다.

스노보드 김상겸(왼쪽)이 8일(현지 시간) 이탈리아 리비뇨 스노우파크에서 열린 2026 밀라노·코르티나 담페초 동계올림픽 스노보드 남자 평행대회전 시상식을 마친 뒤 은메달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2026.02.08. 리비뇨=뉴시스
스노보드 김상겸(왼쪽)이 8일(현지 시간) 이탈리아 리비뇨 스노우파크에서 열린 2026 밀라노·코르티나 담페초 동계올림픽 스노보드 남자 평행대회전 시상식을 마친 뒤 은메달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2026.02.08. 리비뇨=뉴시스
김상겸이 박 씨를 처음 만난 건 2017년이었다. 스노보드에 대해 잘 몰랐던 박 씨는 ‘국가대표 운동선수’라는 말만 듣고 소개팅에 나갔다. 김상겸은 “알파인은 더 빨리 내려오는 사람이 이기는 종목”이라고 설명한 뒤 슬로프에 데리고 가 보드 타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매력을 어필했다.

두 사람은 연인으로 발전했고 박 씨는 이듬해인 2018년 남자 친구가 평창 올림픽에 출전한 모습을 직접 보러 갔다. 2014년 소치 대회 때 예선 탈락했던 김상겸은 박 씨가 지켜보는 가운데 16명이 겨루는 결선에 진출했지만 첫판에 그대로 탈락하며 대회를 마쳤다.

박 씨는 그때까지도 김상겸에게 올림픽이 어떤 의미인지 잘 몰랐다. 그저 처음 ‘직관’한 올림픽 경기장 분위기가 신기했을 뿐이었다. 박 씨는 “나는 마냥 즐거웠는데 오빠(김상겸)가 생각보다 많이 아쉬워하더라. 끝나고 만나 같이 울면서 ‘오빠한테 올림픽이 엄청 큰 무대였구나’ 하고 느꼈다. 그때부터 나도 어떻게 해야 오빠에게 도움이 되는지 하나하나 배워갔다”고 돌아봤다. 첫 번째 흘린 눈물은 아쉬움이었다.

스노보드 남자 평행 대회전에서 값진 은메달을 획득한 김상겸이 8일(현지시간) 이탈리아 리비뇨의 스노파크에서 열린 2026 밀라노·코르티나담페초 동계올림픽 스노보드 남자 평행 대회전 시상식을 마친 뒤 메달을 깨물며 기뻐하고 있다. 2026.2.8 ⓒ 뉴스1
스노보드 남자 평행 대회전에서 값진 은메달을 획득한 김상겸이 8일(현지시간) 이탈리아 리비뇨의 스노파크에서 열린 2026 밀라노·코르티나담페초 동계올림픽 스노보드 남자 평행 대회전 시상식을 마친 뒤 메달을 깨물며 기뻐하고 있다. 2026.2.8 ⓒ 뉴스1
4년 후 김상겸은 베이징 올림픽에 나서며 박 씨에게 ‘메달을 목에 걸어주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채 결선에도 오르지 못한 채 쓸쓸히 짐을 쌌다. 대회 후 영상통화를 하면서 둘은 이번에도 울었다. 슬픔의 눈물이었다.

하지만 박 씨는 오히려 그때 김상겸에 대한 확신이 들었다고 했다. 박 씨는 “영상통화를 하면서 서로 말없이 눈물만 흘렸다. 그때 ‘이 사람이랑 결혼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슬픔을 나눠도 괜찮은 사람이겠다’는 생각이 들었디”고 했다.

두 사람은 2023년 봄 화촉을 밝혔다. 선수 생활 내내 뭔가가 부족한 선수였던 김상겸은 결혼 이후 모든 일이 술술 풀렸다. 2024년 국제스키·스노보드연맹(FIS) 월드컵에서 개인 첫 메달을 따냈다.

출처 김상겸 인스타그램
출처 김상겸 인스타그램
다만 이번 시즌에는 월드컵에서 이렇다 할 성적을 내지 못한 채 올림픽 무대로 향했다. 박 씨는 “‘남편의 자신감이 꺾이지 않아야 할 텐데’, ‘새로 바꾼 보드가 괜찮을까’ 걱정이 됐지만 나는 무조건 믿어줘야 하는 사람이다. 말은 아끼고 남편이 경기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평소의 루틴을 지키려고 노력했다”고 말했다.

지난 시즌까지 길이 189~191cm짜리 보드를 타던 김상겸은 이번 시즌 보드 길이를 195cm로 늘렸다. 보드가 길어지면 회전은 어려워 지지만 속도를 내는 데는 유리하다. 결혼 후 처음 맞는 올림픽을 앞두고 단점을 보완하는 대신 강점을 끌어올리는 쪽으로 승부수를 던진 것이다. 그리고 개인 네 번째 올림픽에서 쟁쟁한 강자들을 잇따라 꺾으며 꿈에 그리던 메달을 아내에게 선물할 수 있게 됐다.

김상겸이 실업팀(하이원)에 입단해 월급을 안정적으로 받을 수 있게 된 것도 아내를 만난 이후였다. 김상겸은 하이원 창단(2019년) 전에는 짬짬이 건설 현장에서 막노동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훈련비를 마련했다. 박 씨는 “하이원 팀에 한 번 더 감사드린다. 팀 도움으로 결혼도 하고 안정적으로 살 수 있게 됐다”고 했다.

스노보드 선수 김상겸(37·하이원)이 2026 밀라노·코르티나담페초 동계 올림픽 남자 평행대회전에서 은메달을 따낸 뒤 아내와의 통화에서 눈물을 흘리는 모습.(김상겸 아내 인스타그램 게시물 갈무리)
스노보드 선수 김상겸(37·하이원)이 2026 밀라노·코르티나담페초 동계 올림픽 남자 평행대회전에서 은메달을 따낸 뒤 아내와의 통화에서 눈물을 흘리는 모습.(김상겸 아내 인스타그램 게시물 갈무리)
이번 올림픽이 끝난 뒤에도 부부는 영상통화를 했다. 박 씨는 이번에는 그 통화를 녹화했다. 남편이 올림픽 메달을 보여주는 장면을 기록으로 남기고 싶었기 때문이다. 박 씨는 “세 번째로 같이 울었는데 이번에는 눈물 맛이 달았다”며 웃었다. 세 번째는 기쁨의 눈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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