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그력에 실력까지 갖춘 임찬규…국내투수 중 평균자책점 가장 낮아

  • 동아일보

올 시즌 첫 등판이었던 3월 26일 한화전에서 경력 첫 완봉승을 달성한 임찬규가 모자를 벗어 팬들에게 감사 인사를 하고 있다. LG트윈스 제공
올 시즌 첫 등판이었던 3월 26일 한화전에서 경력 첫 완봉승을 달성한 임찬규가 모자를 벗어 팬들에게 감사 인사를 하고 있다. LG트윈스 제공

잘생긴 사람이 웃긴 경우는 많지 않다.

‘잘생김=야구 실력’인 야구장에서 LG 임찬규(33)는 일찌감치 실력보다는 ‘개그력’으로 리그 1위를 찍었다. 임찬규가 손아섭(37·한화)과 세 시간 가까이 수다만 떤 한 유튜브 채널 영상은 4년 전 업로드 당시 조회수 200만뷰가 나왔는데 아직도 보는 사람들이 있어 조회수가 350만뷰 가까이 올랐다. 야구선수가 나온 유튜브 영상 중 최고 조회수다.

그런데 올 시즌엔 실력까지 리그 1위다.

시즌 첫 경기부터 생애 첫 완봉승(3월 26일 한화전)을 거두더니 시즌 평균자책점이 2.69로 국내 투수 중 가장 낮다. 2022시즌까지만 해도 임찬규는 평균자책점이 5.04로 팀에서 ‘뒤에서 여섯 번째’에 있던 투수였다. 자유계약선수(FA) 자격은 갖추고도 신청도 못했다. 2023시즌은 선발 보직도 잃은 채 시작했다. 하지만 그해 임찬규는 결국 선발 자리를 되찾고 3점대 평균자책점(3.42)에 14승을 올렸다.

당시 임찬규의 반등에 차명석 LG 단장은 ‘회광반조(回光返照)’라며 놀렸다. 해가 저물 때 잠시 밝아진다는 사자성어는 사람이 죽기 직전 잠시 원기를 찾는 상태를 칭한다. 그런데 임찬규는 정확히 그때부터 죽기는커녕 살아나 올 시즌 3년 연속 10승을 달성했다. LG 구단 역사상 7명만 해낸 일이다.

20일 서울 잠실구장에서 만난 임찬규는 “저는 그때(2023시즌)도 제 ‘저점(低點)’이라고 했었다. 단장님이 일부러 그렇게 말하셨겠지만, 혹시라도 진심이었다면 ‘보는 눈이 정확히 틀리셨다’라고 말씀드리고 싶다”라면서도 “팬분들이 FA 계약 잘됐다고 난리다. 단장님은 일을 잘하신 거니 야구장에서 자신 있게 다니셔도 된다”라고 했다.

만나면 서로를 ‘디스’하기 바쁜 차명석 단장(오른쪽)과 임찬규는 LG 구단에서 ‘톰과 제리’로 통한다. 임찬규 인스타그램
만나면 서로를 ‘디스’하기 바쁜 차명석 단장(오른쪽)과 임찬규는 LG 구단에서 ‘톰과 제리’로 통한다. 임찬규 인스타그램

임찬규는 2023시즌을 마치고 LG와 4년 총액 50억원에 FA 계약했다. ‘FA 대박’ 시대에 타 구단과는 아예 협상 창구도 닫았다. 게다가 계약액의 거의 절반(24억원)이 성적과 연동된 옵션이다. 구단이 처음 제시한 보장액은 더 높았지만, 임찬규가 외려 보장액을 낮추고 옵션을 높인 뒤 “다 받아 가겠다”라는 말을 지켰다.

프로야구 출범 이래 시속 150km 이상 빠른 공이 가장 많아진 ‘구속 혁명’ 시대에 임찬규는 빠른 공 평균 구속 140km로 국내 에이스 자리에 섰다. 150km 넘는 빠른 공을 던져 1순위로 지명을 받은 투수가 20대 내내 기대만큼 활약하지 못하다 정작 구속을 10km 가까이 잃고 서른셋에 최고 기록을 찍고 있는 것이다.

임찬규는 “투수가 서른 넘어서 이런 경우는 저도 못 본 것 같다”며 “20대 때는 스피드를 포기할 수 없어서 좀 더 집착했던 것도 있는데 오히려 조금만 일찍 깨달았으면 어땠을까 아쉽다”고 했다.

8일 한화전에서 역투하는 임찬규. 임찬규는 올 시즌 한화전에 4경기 선발등판 해 평균 7.25이닝을 소화하며 평균자책점 0.62로 극강이다. LG 제공
8일 한화전에서 역투하는 임찬규. 임찬규는 올 시즌 한화전에 4경기 선발등판 해 평균 7.25이닝을 소화하며 평균자책점 0.62로 극강이다. LG 제공

2023시즌을 준비하며 임찬규는 당시 읽던 책에 ‘이 공부를 하고 난 전과 후가 많이 바뀔 것 같다’고 적었다. 실제로 2011~2022시즌까지 평균 3.9이닝, 평균자책점 5.33으로 안정감이 없던 투수는 2023~2025시즌 평균자책점 3.32, 평균 5.4이닝을 소화하는 믿고 보는 선발투수가 됐다. 17일 SSG전에서는 목에 담 증세가 있었지만 6이닝 무실점으로 LG 국내 선발진 중 첫 두 자릿수 승수를 올렸다.

임찬규는 “2022시즌을 마치고 보니 한 게 너무 없더라. FA 신청도 못하고 (당시 정규리그 2위)팀은 가을야구에서 (당시 정규리그 3위) 키움에 져 떨어지고. 충격이었다”며 “뭐라도 해야 했다. 그간 운동을 안 한 건 아니니 정신적인 공부라도 해야겠다 싶었다”고 했다.

임찬규는 “제가 구위가 좋아지거나 회전수가 올라간 게 아니다. 그렇다고 보더라인에만 던지는 투수도 아니다”라며 “단순하게 생각하는 트레이닝을 했다. ‘몸이 안 좋다?’ 그러면 거기서 끝이다. ‘몸이 안 좋으니 제구 안 되겠지, 지겠지’ 이런 불안을 잘 자제하고 있다”고 했다.

이미 신인 시절 이대호를 상대로 150km 직구를 꽂아 넣고, 세이브 실패를 범한 고참 봉중근을 격려해 ‘멘탈센세’라 불렸던 임찬규가 ‘각 잡고’ 멘탈 공부를 했다는 것이다. 임찬규는 “그 나이치고는 당돌했던 것 정도였다. 성숙함이 진화됐다”고 평했다.

‘고독한 에이스’는 익숙해도 ‘수다쟁이 에이스’는 어색한 게 사실이다. 임찬규는 “이런 선수가 없다는 건 좋은 거 아닌가. 개인적으로 SNS에 ‘다른 팀 팬인데 응원한다’고 메시지 주시는 분들이 정말 많다. 일일이 대답을 못 해 죄송하다. 야구 잘한다고 갑자기 무게 잡는 것도 웃기다. 해오던 게 있는데 계속 이런 캐릭터로 가겠다”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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