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와 ‘쩐(錢)의 전쟁’[장환수의 수(數)포츠]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8월 23일 11시 5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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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V골프 출범 계기로 본 스포츠 거대 자본의 힘겨루기

LIV 3차대회에서 와이어 투 와이어 우승을 차지한 헨릭 스텐손. 베드민스터=AP 뉴시스
LIV 3차대회에서 와이어 투 와이어 우승을 차지한 헨릭 스텐손. 베드민스터=AP 뉴시스
골프는 대표적인 자본주의 스포츠다. 시장의 반응은 돈과 직결된다. 테니스와 달리 남녀 대회 상금은 크게 차이가 난다. 전성기 시절 타이거 우즈는 필 미컬슨을 비롯한 최상위 경쟁자 10명 몫을 벌었다. 골프 장비와 의상, 액세서리, 레슨 등은 글로벌 산업으로 성장했다. 프로스포츠 중 몇 안 되는 개인 경기이기도 하다. 국가대항전과 단체전이 있지만 대부분 이벤트 대회다. 무엇보다 심판이 없는 유일한 스포츠다. 법치보다 소중한 보수의 최고 가치인 양심을 지향한다.

이런 골프가 우리나라에선 귀족 스포츠로 낙인찍혀 곤욕을 치렀다. 환경 파괴의 주범으로 몰렸다. 접대, 뇌물, 사기, 도박의 상징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최경주, 박세리가 등장하면서 제 자리를 찾았다. 이제 MZ세대들도 즐기는 국민 스포츠가 됐다.

그럼에도 엘리트 골프는 여전히 미국과 유럽이 주도한다. 아시아는 변방이다. 시장 규모와 전통, 경기력, 슈퍼스타 탄생 등에서 비교가 안 된다. 한국 여자골프는 21세기 들어 세계 최강이지만 고진영이 우즈를 대체할 수는 없다. 이런 상황에서 사우디아라비아 국부펀드가 후원하는 LIV골프 인비테이셔널 시리즈가 올해 출범하면서 세계 골프계는 지각 변동을 일으키고 있다. 6000억 달러(약 800조원)에 이르는 중동의 오일머니가 서구의 양대 기득권을 향해 전면전을 선포했다.

● 파격적인 대회 방식과 상금 규모
LIV 시리즈는 5개월간 8개 대회를 치른다. 6월 중순 영국 런던 개막전을 시작으로 3개 대회가 이미 열렸다. 48명의 초청 선수가 18개 홀에서 샷건 방식으로 동시 출발해 컷오프 없이 3라운드 54홀 대회를 치른다. LIV는 로마자로 숫자 54를 상징한다. 전체 경기 시간은 5시간 이내로 줄었다. 모든 홀에 카메라를 설치해 선수들의 샷 장면과 순위 변동을 F1 레이스처럼 실시간 종합적으로 보여준다. ‘눈을 깜빡거리지도 마라(Don’t Blink)‘가 슬로건이다.

7차 대회까지 매 대회에 2500만 달러가 걸려 있다. 4명이 한 팀을 이뤄 개인전과 단체전을 동시 시상하는데, 개인전은 2000만 달러(우승 400만 달러), 단체전은 500만 달러(우승 300만 달러)다. 한 선수가 최대 475만 달러를 벌 수 있다. 꼴찌도 12만 달러를 챙긴다. 마지막 8차 대회는 5000만 달러를 놓고 팀 매치플레이를 벌인다. 이뿐만 아니다. 7차 대회까지 개인전 포인트 상위 3명은 3000만 달러(우승 1800만 달러)를 나눠 갖는다. PGA 페덱스컵 최종전 우승 보너스(1500만 달러)보다 많다.

시즌 총 상금은 2억5500만 달러로 대회당 평균 상금은 3187만 달러(약 425억 원)에 이른다. 47개 대회에서 1027만 달러인 미국프로골프(PGA)의 3배다. 메이저대회인 US오픈(1750만 달러)과 디오픈(1400만 달러)을 합친 것보다 많다.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시즌 총상금은 8570만 달러로 LIV 시리즈 3개 대회보다 적다.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는 305억 원으로 1개 대회보다 적다.

● 우즈와 미컬슨의 30년 전쟁 2라운드
‘골프 황제’ 타이거 우즈는 지난달 13일 디오픈 개막에 앞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LIV 골프로 이적한 선수들에 대해 배신자라며 거세게 비판했다. 세인트앤드루스=AP 뉴시스
‘골프 황제’ 타이거 우즈는 지난달 13일 디오픈 개막에 앞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LIV 골프로 이적한 선수들에 대해 배신자라며 거세게 비판했다. 세인트앤드루스=AP 뉴시스
둘은 서로 다른 외모와 경기 스타일만큼이나 불편한 사이다. 1996년 말 데뷔한 우즈는 683주 동안 세계 랭킹 1위에 올랐다. 햇수로 13년이 넘는다. 지난해 메이저대회인 PGA챔피언십에서 역대 최고령(51세) 우승을 차지하는 등 통산 45승을 거두고도 영원한 2인자인 미클슨은 우즈를 제외한 누구보다 뛰어났지만 세계 1위는 한 번도 오르지 못했다.

그레그 노먼 LIV 골프인베스트먼트 대표(오른쪽)가 3일 2차 대회에서 우승한 브랜든 그레이스를 축하하고 있다. 노스플레인스=AP 뉴시스
그레그 노먼 LIV 골프인베스트먼트 대표(오른쪽)가 3일 2차 대회에서 우승한 브랜든 그레이스를 축하하고 있다. 노스플레인스=AP 뉴시스
LIV골프 인베스트먼트의 대표인 그레그 노먼은 워싱턴포스트와 인터뷰에서 “우즈를 모셔오기 위해 앞자리가 높은 9자리 숫자의 금액을 제시했다”고 밝혔다. 이에 최고 10억 달러(약 1조3300억 원) 설이 제기됐다. 그동안 우즈가 벌어들인 총수입은 통산 상금 1억2000만 달러의 15배 수준인 약 18억 달러로 알려져 있다. 2010년 이혼 위자료로 7억5000만 달러를 지급한 그로선 욕심이 날 법도 했지만 천문학적 돈보다 아직 세워야 할 기록이 남아 있는 PGA 잔류를 택했다.

반면 미컬슨은 “내가 원하는 곳에서 경기를 하고 싶다”고 했다. 선수 시절부터 “투어가 선수로부터 너무 많은 것을 가져간다”는 지론을 갖고 있던 그였다. 미컬슨은 이적료로 2억 달러(더스틴 존슨, 브라이슨 디셈보, 브룩스 켑카는 1억 달러 추정)를 받은 것으로 보인다. 연간 4000만 달러의 스폰서 수입을 날린 데다 집중 비난의 표적이 됐으니 수지맞는 장사는 아니었다. 우승 확률 절반이 넘던 시니어투어도 포기했다. 그의 마지막 목표는 잭 니클러스의 그늘에 가려 역시 2인자였던 노먼의 뒤를 잇는 커미셔너가 아닐까.

● 세계 각 투어의 복잡한 셈법
PGA가 LIV에 반기를 든 첫째 이유는 미국 내 각종 테러 연루 의혹을 받는 사우디아라비아 자본이란 점이다. 이는 미국인들의 반대 여론을 조성하는 데는 효과적이겠지만 실제 이유는 세계 1위 투어로서 누려온 막대한 스폰서십과 중계권료 등에 차질을 빚을 것을 걱정한 때문이다. 사실 우즈도 그동안 중동은 물론 인권 탄압 국가로 평가받는 중국 대회에 자주 나가지 않았던가.

이 관점에서 보면 유럽프로골프(DP월드투어)가 PGA와 보조를 맞추면서도 비교적 LIV에 관대했던 게 이해가 간다. 영국은 20세기 중반 골프의 주도권이 미국으로 넘어갈 때 굴욕을 겪었다. 적의 적은 동료라고 하지 않았던가. LIV 시리즈 첫 대회가 유럽의 심장인 런던에서 열릴 수 있었던 숨은 이유다.

유럽여자프로골프(LET)는 사우디아라비아의 세계 최대 석유회사인 아람코가 후원하는 아람코 팀 시리즈 6개 대회의 후원을 이미 받고 있다. LET의 지분 50%를 갖고 있는 LPGA의 마쿠 서만 몰리 커미셔너는 “노먼이 대화를 원하면 전화를 받겠다”고 밝혔다. 남자에 비해 턱없이 불리한 시장의 열세를 만회하기 위해 LIV와 협력이 가능하다는 계산이다. 넬리 코다는 LPGA에 머물 생각이라는 전제를 달면서도 “매주 1000만 달러의 상금이 나온다면 거부할 선수가 있을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메이저 대회를 주최하는 미국골프협회(USGA)와 영국왕실골프협회(R&A)는 강 건너 불구경이다. 오히려 진정한 오픈대회가 될 것이라는 말까지 나온다.

● 한국과 아시아엔 최고의 기회
LIV는 아시아투어와 10년간 해마다 10개 대회에 총 3억 달러 규모의 장기 후원 계약을 마친 상태다. 마침 21일 제주에서 끝난 시즌 4번째 인터내셔널시리즈(총상금 150만 달러)에서 옥태훈이 우승해 국내 상금의 2배에 이르는 27만 달러(약 3억6000만 원)를 받는 수혜자가 됐다.

LIV가 아시아에 공을 들이는 이유는 만약의 경우에 대비하기 위함이다. LIV는 세계골프랭킹(OWGR) 산정과 PGA 플레이오프 출전 금지 효력 정지 가처분 신청을 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럼에도 LIV는 내년엔 14개 대회를 치르면서 몸집을 계속 불려나갈 예정이다. 총상금은 PGA와 맞먹는 수준이 된다. 이번 주 PGA 페덱스컵 최종전이 끝나는 대로 7명의 선수 영입을 발표할 예정이다. 디오픈 챔피언 캐머런 스미스와 캐머런 영, 마크 레시먼 등이 거론된다. 슈퍼스타의 시니어투어란 비판을 받았지만 젊은 피가 채워질 것으로 보인다. 사방에 우군을 만들면서 PGA를 압박해가고 있는 LIV의 도전은 결실을 맺을 수 있을까.


장환수 스포츠전문기자 zangpab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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