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1964 도쿄올림픽도 하루 전 ‘보이콧’

유재영 기자 입력 2021-04-07 03:00수정 2021-04-07 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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反IOC 국제대회 출전자 제재 반발
국호 ‘North Korea’ 지정도 원인
육상영웅 신금단 선전 계획 무산
1964년 도쿄 올림픽 직전 북한의 ‘보이콧’으로 발걸음을 되돌린 북한의 육상 영웅 신금단(왼쪽)과 6·25전쟁 때 헤어진 딸을 만나기 위해 한국에서 무작정 일본으로 건너간 아버지 신문준 씨의 극적인 만남은 세계적인 화제가 됐다. 동아일보DB
북한이 공교롭게도 두 차례 일본 도쿄에서 열리는 여름올림픽에 불참하게 됐다. 지리적으로 가깝고 재일조선인총연합회(총련) 등 친북 재일교포 단체들이 많아 선수단의 현지 적응 등이 유리한데도 올림픽 참가를 포기했다. 이번에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 19) 사태로 도쿄에 많은 인원을 파견하는 것이 부담스러운 데다 정치적으로도 일본과의 껄끄러운 관계가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1964년 도쿄 올림픽에서 개막 하루 전에 ‘보이콧’을 선언하고 선수단을 철수시켰다. 올림픽에 앞서 당시 사회주의 국가 중심으로 치러진 반국제올림픽위원회(IOC) 성격의 신흥국경기대회(GANEFO·가네포)에 출전한 선수들이 IOC로부터 올림픽 출전 금지 제재를 받자 이에 반발한 것이다.

제1회 가네포는 1963년 10월 인도네시아에서 인도네시아 중국 북한 등을 중심으로 열렸다. IOC는 정치적 목적의 대회라며 이 대회를 인정하지 않았고 참가 선수들에게 제재를 가했다. 당시 도쿄올림픽조직위원회는 이 대회 불참 선수들에게만 ID카드를 발급했다. 철수를 결정하면서 13개 종목 145명의 임원진과 선수단 등이 북한으로 되돌아갔다. 북한 여자배구팀이 빠진 자리엔 한국 여자배구팀이 대신 출전하게 됐다.

가네포 육상 여자 400m에서 비공인 세계기록을 세우며 육상 영웅이 된 신금단을 내세워 선전효과를 얻으려던 북한의 계획도 무산됐다. 신금단은 일본을 떠나기 직전 6·25전쟁 당시 1·4후퇴로 남한에 정착한 아버지 신문준 씨와 10여 분간 상봉을 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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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OC가 북한이 원했던 국호 사용을 막은 이유도 있었다. 북한은 1963년 1월 스위스 로잔에서 남한과 최초의 체육회담을 열고 도쿄 올림픽 단일팀 구성을 논의했으나 결렬된 뒤 그해 10월 IOC로부터 공식 회원국 가입 승인을 받았다. 하지만 IOC는 북한이 요구한 ‘DPRK(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라는 국호 사용을 막고 그 대신 ‘North Korea’란 국호를 썼다.

유재영 기자 elegant@donga.com기자페이지 바로가기>
#북한#도쿄올림픽#보이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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