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석 기자의 퀵어시스트]이마트 야구가 소환한 신세계 쿨캣의 추억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1월 28일 12시 3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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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세계 최초 운동 팀으로 여자프로농구 창단
정선민 앞세워 돌풍 일으키다가 돌연 해체 충격
경영난과 무관한 매각은 SK와 같은 맥락

신세계 쿨캣을 여자프로농구 왕조로 이끈 정선민.
신세계 쿨캣을 여자프로농구 왕조로 이끈 정선민.

신세계그룹이 핵심 계열사인 이마트를 내세워 프로야구에 뛰어들면서 스포츠 무대에서 뜨거운 주목을 받고 있다.

신세계가 처음 프로스포츠와 인연을 맺은 건 여자프로농구였다. 신세계는 1997년 8월 여자실업농구 태평양을 인수해 이듬해 출범한 한국여자프로농구(WKBL) 원년리그부터 참가했다. 농구단 인수 가격은 7억5000만 원. 동아일보 보도에 따르면 이는 태평양이 확보한 여고농구 랭킹 1위 허윤자(선일여고)와 청소년대표 이혜진, 남경민, 전수진 등에 지급한 계약금을 포함한 액수다. 이번에 야구단 인수 가격은 야구단 주식 1000억 원과 인천 강화군에 있는 야구 연습장 등 토지와 건물 352억8000만 원 등 역대 최고인 총 1352억8000만 원이었다. 이마트가 인수한 프로야구 SK 와이번스의 연고지는 인천으로 과거 태평양과 같다. 신세계그룹과 태평양이 스포츠를 통해 직간접적으로 두 번째 연결된 것이다.

신세계는 여자프로농구팀을 창단하면서 ‘고객에게 사랑받은 팀’, ‘여자농구 중흥의 촉매’라는 목표를 세웠다. 여자농구팀은 당시 13개 계열사를 거느린 신세계그룹의 첫 운동 팀이라 사내 관심도 높았다. 팀 이름 작명을 위해 서울시내 중고교에 공모까지 했다. 창단 배경으로 부드러운 회사의 이미지와 맞아떨어지기 때문이라는 게 신세계 측 설명이었다.

여자프로농구 1999 여름리그에서 정상에 오른 신세계 쿨캣 선수들. 신원건 기자
여자프로농구 1999 여름리그에서 정상에 오른 신세계 쿨캣 선수들. 신원건 기자

신세계 여자프로농구팀의 이름은 쿨캣으로 결정됐다. 연고지는 광주. 창단식은 1998년 광주신세계백화점에서 열렸다. 흔히 스포츠 팀 창단식은 호텔에서 열리기 마련. 의외의 장소 선정처럼 보였지만 다 계획이 있었다. 1995년 영업을 시작한 광주 신세계백화점의 홍보에 여자프로농구팀을 전면에 내세운 것이다. 그래서 연고지도 광주였다. 최근엔 여자프로농구 인기가 뚝 떨어졌지만 1990년대만 해도 인기 겨울 스포츠로 각광을 받았다. 스타들이 즐비했고, 1994년 히로시마 아시아경기 금메달과 2000년 시드니올림픽 4강 진출에서 보듯 국제 경쟁력도 뛰어났다.

여자프로농구 신생 신세계 쿨캣은 WKBL 리그 초창기 돌풍을 일으켰다. 외환위기가 몰아쳐 여자농구팀이 줄줄이 해체되는 와중에 신세계는 역시 문을 닫은 SK증권 여자농구단의 간판스타 정선민을 해체 팀 드래프트를 통해 영입해 단번에 우승 전력을 갖췄다. SK가 신세계에 날개를 달아줬다고 할까. 프로야구 진입을 갈망하던 신세계에 SK텔레콤이 길을 터준 것을 떠올리게 하는 대목이다.

태평양이 사용하던 서울 서초구 체육관을 임대했던 신세계는 이후 현대건설이 쓰던 서울 청운동에 위치한 숙소와 연습장을 이용하게 된다. 청와대에 인접한 신세계 훈련장소는 광화문 부근 언론사들하고도 가까워 취재진의 발걸음이 늘 끊이지 않았던 기억도 난다.

여자프로농구 신세계 쿨캣에서 유망주로 기대를 모은 신혜인. 신혜인은 은퇴 후 남자배구 간판스타 박철우(한국전력)과 결혼했다. 김동주 기자
여자프로농구 신세계 쿨캣에서 유망주로 기대를 모은 신혜인. 신혜인은 은퇴 후 남자배구 간판스타 박철우(한국전력)과 결혼했다. 김동주 기자

신세계는 1999년 여름리그 정상 등극을 시작으로 2000 여름, 2001년 여름, 2002년 겨울리그까지 4차례 챔피언결정전 우승을 장식했다. 2000년을 전후로 최강의 면모를 과시했다. 주요 선수로는 정선민을 비롯해 김지윤, 김정은, 하은주, 신혜인 등이 활동했다. 역대 감독으로는 이문규, 김윤호, 정인교, 조동기 등이 있었다.

WKBL 신흥 강호로 군림하던 신세계는 2000년대 중반 이후 침체기를 겪었다. 전통의 농구 명문 삼성생명에 뒤를 이어 신한은행, 우리은행이 장기집권하면서 정상에서 멀어졌다. 우수 선수 영입을 위한 몸값 경쟁이 치열해진 가운데 신세계는 오히려 농구단 투자가 줄어들었다. 유망주 확보에 어려움을 겪으며 하위권으로 더 밀려났다. 보험업계인 삼성생명과 금호생명, 우리은행 신한은행 국민은행 등 금융권 팀들이 라이벌 구도를 그리는 가운데 WKBL에서 유일한 유통업체인 신세계는 성적 부진까지 겹쳐 여자프로농구에 서서히 매력을 잃게 됐다는 분석이 나왔다.


신세계는 2012년 전격적으로 여자프로농구 매각을 발표하게 된다. 신세계는 보도자료를 통해 “금융팀 위주로 운영되는 여자프로농구 상황에서 한계를 느꼈다”라며 “인수 기업을 찾는데 최선을 다했다. 여자농구단을 해체하는 대신 동계올림픽 종목을 지원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광주신세계백화점 지역 정착과 WKBL 타이틀 스폰서 참여를 통한 이마트 이미지 제고에 활용했던 신세계가 더 이상 농구팀의 존재가치가 없다는 판단에 따라 하루아침에 팀을 없앴다는 비난 여론이 거세게 일기도 했다. 신세계 여자프로농구팀은 하나은행이 인수하게 된다. 하나은행 인수는 당시 정치권 실세였던 WKBL 총재의 영향력에 외환은행을 합병한 하나은행의 이해가 결합한 산물이었다.

SK 와이번스 인수한 신세계그룹 이마트
SK 와이번스 인수한 신세계그룹 이마트
신세계의 여자프로농구 참여와 해체 과정을 살펴보면 기업의 이윤 추구에 스포츠구단이 얼마나 부합할 수 있느냐에 그 존재 의미가 있다고도 볼 수 있다. 모기업이 어려워 매각이 이뤄진 여자농구 앞선 사례와 신세계는 달랐다. 이런 점에서 SK텔레콤이 프로야구 와이번스를 신세계와 넘긴 것과 결을 같이 한다고도 볼 수 있다.

프로야구는 여자프로농구 연간 운영비의 20배가 넘는 500억~600억 원이 들어간다. 여전히 자생력을 갖지 못해 모기업 의존도가 50% 이상이 되는 야구단이 많다. 경기력 저하와 인구 감소에 따른 관중 동원 어려움, 코로나19 등 흥행 악재는 늘어나고 있다. 신세계가 운영하는 스타필드에 실내 운동시설을 갖추거나 반려동물 입장 허용, 전국 맛집 입점 등과 야구단 운영은 전혀 다른 차원의 얘기일 수 있다. 물론 더 큰 그림을 위한 계산 없이 오너의 의지만으로 야구판에 뛰어들지는 않았겠지만. 신세계가 여자프로농구의 씁쓸한 결말과 달리 새로운 지평을 넓힌다면 야구를 뛰어넘어 한국 스포츠에도 큰 이정표가 세워질 것 같다.

김종석 기자 kjs012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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