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어부’ 출연 허재의 3대 걸친 낚시 인연[김종석기자의 퀵 어시스트]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9월 15일 12시 3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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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구 MVP 아들 허훈과 17일 방송
코트 밖에서 기다림과 여유 지혜 터득

도시어부2에 같이 출연해 처음으로 함께 낚시를 한 허재와 허훈 부자. 채널A 제공
도시어부2에 같이 출연해 처음으로 함께 낚시를 한 허재와 허훈 부자. 채널A 제공

‘농구대통령’ 허재에게 낚시가 없었다면 코트 인생은 달라졌을지 모른다.

용산중과 용산고 시절부터 이미 당대 최고 대어로 이름을 날린 그는 일찌감치 대학팀들의 스카우트 공세를 받았다. 양대 농구 명문 고려대와 연세대를 제치고 중앙대가 허재 영입에 성공한 데는 낚시가 큰 역할을 했다는 건 유명한 일화. 당시 정봉섭 중앙대 감독은 허재 아버지 허준 옹(2010년 작고)이 낚시광이라는 사실에 주목했다. 허재가 중학생이던 시절부터 5년 가까이 허준 옹과 낚시를 다니며 정성을 쏟은 끝에 ‘청룡군단’ 중앙대 유니폼을 입게 됐다. 여의주를 품은 중앙대는 고려대와 연세대가 양분하던 대학 농구 코트 판도를 뒤흔들었다. 한기범, 김유택, 강정수, 강동희, 장일 등을 앞세워 캠퍼스 최강으로 군림했다.

허재는 대학 내내 자신에게 러브콜을 보낸 현대, 삼성이 아닌 신생 기아자동차를 선택한다. 이 선택에 정봉섭 감독의 영향력은 물론 클 수밖에 없었다. 기아자동차는 현대 삼성의 양강 체제를 무너뜨리고 농구대잔치 시절 왕조를 이뤘다. 어찌 보면 한국 농구 역사가 낚시터에서 이뤄졌다고 봐도 과언은 아니다.

허재 역시 어려서부터 아버지를 따라다니며 낚시의 묘미에 빠져들었다. 골프 이전에는 낚시가 유일한 취미였다. 낚시라면 농구만큼이나 열정이 많은 허재가 자신의 뒤를 이어 농구 선수의 길을 걷고 있는 아들 허훈(KT)과 잊을 수 없는 추억을 남겼다.

도시어부2에 출연한 낚시광 허재. 동아일보 DB
도시어부2에 출연한 낚시광 허재. 동아일보 DB

허재는 17일 오후 9시 50분 방영 예정인 채널A 예능 ‘나만 믿고 따라와, 도시어부2’에 등장한다. 허재는 “아들과 낚시를 해본 적이 없다. 서로 바쁘기도 했고, 이런저런 이유가 있었다”며 “방송을 계기로 처음 같이 하게 됐는데 소중한 시간이 됐다”고 말했다. 지난 시즌 프로농구 최우수선수 출신 허훈 역시 “낚시라는 걸 처음 했는데 어디서도 느끼지 못한 신선한 분위기였다. 치열하게 운동만 하다가 여유로워 좋았다”고 했다.

도시어부 녹화 당시 허재는 아들에게 떡밥을 개고, 찌를 맞추는 요령 등 낚시의 기본을 일일이 가르쳐줬다. 허재는 “훈이가 운동 감각이 있어서 그런지 처음 해본 낚시인데도 잘 하더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허재는 낚시에 얽힌 일화도 많다. 1987년 충남 아산(온양)에서 있었던 남녀 농구대표팀 합동 단합대회 에피소드는 여전히 생생하다. 허재는 대표팀 다른 선배 3명 등 네 명이서 관광용 소주 67병과 맥주 한 상자를 비웠다. 그러고도 모두 잠든 사이 새벽 낚시를 해 붕어를 잡아왔다. 당시 멤버였던 현 프로농구 감독은 “새벽에 화장실에 갔더니 세면기에 붕어가 잔뜩 있어서 깜짝 놀랐다”고 떠올렸다. 허재는 “낚시터에 왔는데 가만있을 순 없었다. 좀 취했지만 정신력으로 버텼다”며 웃었다.

선수와 감독 시절 다혈질로 알려진 허재는 낚시와 거리가 멀어 보이는 게 사실. “내가 낚시 한다고 하면 주변에서 믿지를 않는다. 성격이 급하긴 한데 낚시터 가면 12시간도 앉아 있다. 마음을 다스리고 잡념을 없애는 데 최고다. 물론 한 잔 하는 맛도 최고다.”

은퇴 경기를 마친 뒤 아버지, 아내, 두 아들과 나란히 카메라 앞에 선 허재. KBL 제공
은퇴 경기를 마친 뒤 아버지, 아내, 두 아들과 나란히 카메라 앞에 선 허재. KBL 제공

허재는 아버지에게 배운 낚시를 통해 마인드 컨트롤과 대인관계 형성에도 도움을 많이 봤다. KCC 선수 시절 하승진은 “허재 감독님과 낚시를 갔는데 고기도 구워주시고 자상하게 대해주셔 마음을 열 수 있었다. 감독님을 새롭게 보게 됐다”고 말하기도 했다.

특히 온갖 뒷바라지로 자신을 키운 아버지(허준 옹)와는 낚시를 하며 부자간의 애틋한 정과 가족의 소중함을 쌓을 수 있었다. 허재는 은퇴 후 아내, 두 아들과 미국 연수를 떠났다가 KCC 감독 제의를 받고 귀국했다. 자신만 돌아와 기러기 생활을 하고 나머지 가족은 계속 미국 유학생활을 시키려고 했지만 아버지의 극구 만류로 모두 귀국했다. “가족은 떨어져 있으면 안 된다. 늘 같이 있어야 한다”는 게 아버지 주장이었다. 만약 가족들이 미국에 그냥 있었다면 후일 한국 프로농구의 간판으로 성장한 허재의 두 아들 허웅(DB)과 허훈은 없었을지 모른다.

허재의 뒤를 이어 농구를 하고 있는  두 아들 허웅(왼쪽)과 허훈(오른쪽)의 학창 시절 모습.
허재의 뒤를 이어 농구를 하고 있는 두 아들 허웅(왼쪽)과 허훈(오른쪽)의 학창 시절 모습.

앞으로 허재는 자신이 아버지와 그랬듯 두 아들과 짬나는 대로 낚시를 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허훈 역시 “다음엔 아버지, 형과 다시 낚시를 하고 싶다”고 말했다.

“농구 코트에선 모든 게 빠르다. 낚시터는 기다림의 공간이다. 농구를 하는 두 아들도 그런 지혜를 터득했으면 좋겠다. 뭐든 완급조절이 중요하다. 새 시즌엔 부상 없이 한층 성숙한 모습을 보였으면 좋겠다.” 왕성한 방송활동과 함께 세월을 낚는 허재의 한 마디였다.

김종석기자 kjs012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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