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소리 편해진’ 박용택 “은퇴투어 논란?”…이제야 말한다[강홍구 기자의 와인드업]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12월 23일 14시 0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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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목소리 편해졌다?”

올 시즌을 끝으로 19년 프로선수 생활을 마무리한 ‘전 LG 선수’ 박용택(41)은 최근 이 말을 자주 듣는다고 했다. 아쉬움이 남지 않느냐고 묻자 “다시 태어나면 야구를 보지도 않을 것 같다”는 예상치 못한 답이 돌아왔다. 박용택이 웃으며 말을 보탰다. “농담 아니라 정말 박찬호, 이승엽 선배 수준 아니면 야구에 관심 갖지 않을 것 같아요. 바꿔 말하면 정말 힘들었어요. 다시 시작해도 이것보다 더 노력할 수 없다고 생각해요. 그러니까 조금의 아쉬움도 없는 거죠.”

은퇴는 했지만 박용택은 그 어느 때보다 바쁜 12월을 보내고 있다. 각종 시상식에 방송 출연, 인터뷰까지 스케줄이 가득 차 있다고 한다. 최근에는 생애 첫 일구대상을 받기도 했다. 지난달부로 LG와의 계약이 끝난 박용택은 은퇴 이후의 삶도 차근차근 준비해나가고 있다. 해설위원, 대학원(스포츠심리학) 진학 등 이미 그려놓은 계획들이 많았다. 최근 서울 종로구 동아미디어센터에서 박용택을 만났다.



●19년 동안 버티고 쌓아서 이겨낸 2504안타
올 시즌 그의 이름 앞에 자주 붙었던 수식어 중 하나는 ‘은퇴투어 논란’이었다. 시즌 중반 은퇴투어 이야기가 나오면서 ‘자격’에 대한 시비가 불붙었다. 결국 그가 직접 나서 고사의 뜻을 밝혀야 했다. 솔직한 마음은 어땠을까.

박용택은 “세상 억울했다. 문제의 요점을 파악하지 못하고 악플을 다는 이들이 많았다. 심지어 내가 은퇴투어를 요청했다고 아는 사람도 있더라”고 말했다. 정규시즌에는 댓글을 잘 읽지 않는다는 박용택은 관련 기자회견을 앞두고 오랜만에 댓글 정독을 했다고 한다.

논란이 일면서 끝내 고사했지만 ‘자격’에 대한 개인의 생각은 분명히 했다. 박용택은 “나에게 급이 안 된다고 말하면 우리나라에 급이 되는 선수들은 흔치 않다고 생각한다. 다른 생각이 있으면 나에게 직접 와서 이야기하라고 말하고 싶다. 자신 있다”고 했다.



그가 세운 KBO리그 최다 안타 신기록(2504개)에 대한 자부심이 묻어났다. 박용택은 “메이저리그(MLB)에 통산 3000안타를 기록한 선수가 30명 정도 있다. 그 중에서 (승부도박으로 영구 제명된) 피트 로즈를 제외하고 대부분의 선수들의 명예의 전당에 올라 있다. 물론 그 중에서도 일명 (단타 위주의) 똑딱이도 있고 수비 비중이 적은 선수도 있지만 모두가 박수를 받는 건 3000안타 때문”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3000안타 고지를 넘은 32명의 선수 중 로즈 외에도 현역 앨버트 푸홀스(3236개), 2019시즌 뒤 은퇴한 스즈키 이치로(3089개) 등 6명을 제외한 26명이 명예의 전당에 헌액 돼 있다.

박용택은 “아닌 말로 한 시즌에 300안타 칠 수도 있다. 그러나 3000안타라는 건 그 300안타를 10년은 쳐야 한다는 것이다. 20년 가까이 버티고 쌓아서 이겨낸 최다 안타 기록은 인정받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은퇴투어 반대 의견의 주를 이뤘던 2009년 일명 ‘타격왕 논란’에 대한 사과의 뜻을 다시 한 번 전했다. 당시 홍성흔과 타격왕 경쟁을 벌이던 박용택은 타율 관리를 위해 최종전에 출전하지 않으면서 타이틀은 지켰지만 팬들의 비난을 받았다. 박용택은 “팬들의 설렘을 내 선택으로 없앤 건 죄송하다. 정말 내가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고 덧붙였다. 박용택은 잊을 수 없는 자신의 별명으로 당시 붙은 ‘졸렬택’을 꼽기도 했다.



●모든 상황이 완벽했던 마지막 타석
마지막 경기, 마지막 타석에 대한 기억도 생생했다. 11월 5일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한지붕 라이벌’ 두산과의 준플레이오프 2차전이 그의 마지막 경기가 됐다. 이날 7-8로 한 점 뒤진 8회말 무사 1루 상황에서 대타로 타석에 들어선 박용택은 두산 투수 이영하의 초구를 공략해 3루수 파울 플라이로 물러났다. 박용택은 “스윙 느낌, 기분, 상대 투수, 노리던 공, 1점 차로 지고 있던 상황까지 모든 것이 완벽했다. 경험상 이런 기분일 때는 정말 그런 일이 일어나는 데 내가 조금도 생각하지 않았던 결과가 나왔다. 더그아웃으로 돌아오는데 방망이를 머리에 대고 피식 웃었다. ‘정말 은퇴할 때가 다 됐나 보다’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야구선수 박용택의 삶이 끝난 뒤 눈물을 쏟은 곳은 그라운드도 라커룸도 아닌 집이었다고 한다. 박용택은 “11월 30일 아내와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오늘 LG 트윈스와 계약 끝나는 날이야’라고 말하는 데 갑자기 울음이 터지더라. 아내가 옆에서 너무 웃어서 화장실에 가서 또 울었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그에게 LG 유니폼의 의미를 묻자 “패션의 완성은 블랙 앤 화이트”라는 답이 돌아왔다. 인생의 가장 중요한 덕목은 ‘멋’이라는 그다운 대답이었다.

박용택은 다음시즌 해설위원으로 야구팬들 곁에 돌아올 전망이다. 대학원에서 스포츠심리학 공부 계획도 세우고 있다. 더 이상 선수로 불리고 싶지 않다는 박용택은 아직 명함이 나오지 않았으니 ‘용택 씨’로 자신을 불러달라고 했다. 새로운 타석에 들어서게 될 용택 씨의 앞날을 응원한다.



강홍구기자 windup@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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