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 베이스볼] 2군 본즈·선동열들에게 필요한 기회와 행운

  • 스포츠동아
  • 입력 2019년 4월 24일 11시 3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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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화 송진우 코치(왼쪽)-KT 박승민 코치. 스포츠동아DB
한화 송진우 코치(왼쪽)-KT 박승민 코치. 스포츠동아DB
“아마추어까진 내가 천재인줄 알았다. 하지만 프로 유니폼을 입어보니 1군 주전부터 2군 벤치멤버까지 모두 천재였더라.”

‘2군 여포’. 퓨처스리그(2군)에서는 압도적인 성적을 내지만 1군만 올라오면 유독 힘을 쓰지 못하는 이들을 중국 삼국시대 무장 이름에 빗댄 말이다. 현장에서는 ‘2군 선동열’, ‘2군 배리 본즈’ 등의 단어가 더욱 익숙하다. 박희수(SK 와이번스), 구승민(롯데 자이언츠) 등 이를 딛고 선 이들도 있지만, 장진용(현 LG 트윈스 코치), 나성용(경찰 야구단 코치) 등 결국 유니폼을 벗은 이들도 있다.

차이는 기량이 아닌 멘탈이다. 현장의 선수와 지도자들은 “1,2군의 수준 차이도 무시할 수는 없지만 유의미한 수준은 아니다. 결국 멘탈이 차이를 만든다”고 입을 모은다.

● 기회+인내=멘탈

근력이 부족하면 벌크업을 하면 된다. 하지만 멘탈은 쉽게 키울 수 없다. 프로 초창기, 모 원로 감독이 자신감 부족에 시달리던 투수에게 소주 두 잔을 마신 뒤 마운드에 오르라고 지시해 좋은 결과를 만든 적도 있다. 김태균 KT 위즈 수석코치는 “사이판으로 스프링캠프를 갔을 때 스카이다이빙을 했던 선수도 있다. 딱히 효과는 없었다. 멘탈 키우는 게 그만큼 어렵다”고 되짚었다.

멘탈에는 환경이 크게 작용한다. 리빌딩이 어려운 KBO리그에서 이 분야 대가로 꼽히는 양상문 롯데 자이언츠 감독은 “선수의 멘탈은 감독의 인내심을 먹고 자란다”고 강조했다. 양 감독은 “한 시즌으로도 선수의 장단점을 완벽히 파악하기 어렵다. 2, 3경기는 턱없이 부족하다. 감독이 욕을 먹어도 인내를 해야 선수가 자란다”고 했다. 그렇게 키워낸 선수가 강민호(삼성 라이온즈), 장원준(두산 베어스), 채은성(LG 트윈스) 등이다.

손아섭(롯데)은 “1군 경험이 적은 선수들은 ‘보여주지 않으면 안 된다’는 압박이 든다. 강한 멘탈은 결국 한두 경기 부진해도 다음날 경기에 나설 수 있다는 자신감이 만든다”고 설명했다.

● 자신감을 불어넣는 ‘우연한 행운’

주위의 한두 마디가 자신감을 일깨우는 경우도 있다. KBO리그 통산 최다승(210승) 기록 보유자인 송진우 한화 이글스 투수코치는 현역 시절 슬라이더에 대한 자신감이 없었다. 그러던 2005년 틸슨 브리또와 한솥밥을 먹게 됐다. SK 와이번스와 삼성 라이온즈에서 뛰며 송 코치와 상대했던 그는 “왜 슬라이더를 던지지 않나? 내가 타석에서 본 네 슬라이더는 최고였다”며 자신감을 북돋웠다. 이 무렵 박재홍 현 MBC스포츠+ 해설위원도 비슷한 이야기를 했다. 송 코치는 “주위 환경이 이토록 중요하다”고 회상했다.

박승민(개명 전 박준수) KT 투수코치는 프로 첫 5년간 1군 8경기 출장에 그쳤지만 2006년 61경기에 나서 38세이브를 기록했다. ‘모멘텀’은 후배의 한마디였다. 20점 가까이 내주며 어떤 투수가 나가도 난타당하는 날, 자연히 불펜투수들은 불펜코치의 시선을 피한다. ‘총알받이’가 돼 2군에 내려가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 상황에서 막내급 선수가 박 코치에게 “형님, 제가 던지고 2군 내려가겠습니다”라고 했다. 정작 이튿날 2군에는 박 코치가 내려갔다. 그는 “나름 자존심이 강했는데 지금 뭐하고 있나”라는 자극을 받았다. 스스로도 “그날 전과 후가 완전히 달라졌다”고 회상한다. 38세이브를 거둔 뒤 그 후배에게 “네 덕에 지금 이 자리에 있다”고 감사를 표했을 정도다.

지금도 1군 무대를 꿈꾸며 2군을 평정하는 선수들은 즐비하다. 그들에게 필요한 건 어쩌면 ‘송진우의 동료 브리또’, ‘강민호의 감독 양상문’처럼 우연한 행운일지 모른다.

최익래 기자 ing17@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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