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건의 아날로그 스포츠] FIVB의 살인적인 일정과 혹사에 반발하는 선수들

  • 스포츠동아
  • 입력 2019년 4월 4일 08시 5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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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로공사 박정아(왼쪽). 스포츠동아DB
도로공사 박정아(왼쪽). 스포츠동아DB
해외의 배구전문 매체 월드오브발리는 최근 흥미로운 기사를 내보냈다.

현재 전 세계를 대표하는 스타선수들이 국제배구연맹(FIVB)의 빡빡한 경기일정에 불만을 품고 연판장을 돌렸다는 것이다. 이들 가운데 몇몇 선수들은 이탈리아의 볼로냐에서 이탈리아리그 총재와 사무총장, 이탈리아 배구협회장, 6명의 FIVB 관계자들과의 미팅을 했다고 기사는 전했다. 연판장에 참여한 선수 가운데는 V리그에서 뛰었던 그로저(전 삼상화재)도 있었다.

각국의 리그와 국제대회를 포함해 한 시즌 동안 많은 경기를 소화해야 하는 스타선수들은 먼 이동거리와 잦은 경기일정에 지치고 부상도 많이 생긴다고 불만을 가져왔다. 국제대회에 동참했던 기자도 힘든 원정을 경험한 적이 있다. 선수들에게 공통으로 지급되는 이코노믹 좌석에 억지로 몸을 집어넣은 선수들은 10시간 이상의 장거리 비행에 고통스러워했다. 다리가 길어서 좌석에 앉지도 못하는 선수들은 통로에서 비행시간 내내 서 있었다. 원정지에 도착해서도 딱 이틀 훈련하고 경기에 참가하다보니 시차적응도 힘들었다. 이런 일이 매주 반복되면 선수들의 몸은 피로에 찌들 수밖에 없다.

아쉽게도 선수들의 어려운 상황과 불만은 위로 잘 전달되지 않았다. 지난 시즌 유럽무대에서 활약하는 스타급 선수들은 1년에 약 80경기에 출전했던 것으로 조사됐다. 리그경기와 챔피언스리그, 컵대회, 국제대회인 발리볼내이션스리그(VNL), 월드컵 등 숨쉴 틈 없는 일정이 이어졌다. 올해는 2020도쿄올림픽예선전까지 있어 90경기를 뛰어야 한다.

이런 살인적인 일정에 반기를 든 선수들은 FIVB에 경기일정의 재검토를 요구했다. 볼로냐의 면담에서 어떤 결정이 나오지는 않았다. 선수들의 요구사항이 당장 반영되기도 어렵지만 그렇다고 무턱대고 기다리지만은 않을 것이라는 뜻을 FIVB와 리그, 협회에도 전했다는 뉴스였다.

선수들의 혹사문제는 남의 얘기가 아니다. 우리 V리그에서 활약하는 선수들도 1년 내내 많은 경기와 훈련에 몸이 성할 틈이 없다. 상징적인 사례가 도로공사의 박정아와 이효희다. 지난 시즌 두 사람은 VNL과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도쿄세계선수권대회에 모두 참가했다. 국제대회 시즌을 마치자마자 2018~2019시즌에 돌입했다. 시즌 30경기와 봄 배구 7경기를 뛰었다. 한술 더 떠 박정아는 며칠 쉬지도 못하고 한국과 태국의 올스타전 출전을 위해 3일 새벽 출국했다. 5,7일 두 경기를 마치고 돌아오면 잠시 쉬었다가 다시 대표팀에 소집되면 움직여야 한다.

흥국생명 이재영도 마찬가지다. 리시브 부담까지 짊어진 위치다. 지난해 세계선수권대회 때는 어깨가 아픈데도 뛸 선수가 없어서 억지로 나가야 했다.

다가올 국제대회 시즌에 충분히 쉴 기회를 준다는 보장도 없어 걱정이다. 예정된 일정이 너무 빡빡하다. 선수들은 귀중한 국가의 자산인데 너무 일찍 소모시켜 오래 선수생활을 하지 못하게 만들까봐 걱정이 앞선다. 혹사 당하다 보니 나이는 20~30대인데 무릎은 이미 60대가 된 선수들도 여럿이다.

더 중요한 문제가 있다. 우리 선수들은 외국과 달리 합숙도 한다. 사실상 개인생활을 할 시간이 없다. 건강한 사회생활을 할 기회를 너무나 오랫동안 빼앗긴 선수들은 은퇴하면 험한 세상에 홀로 남겨진 아이들처럼 된다. 이들에게도 인간적인 삶과 선수 이후의 인생을 준비할 충분한 시간과 기회가 보장되어야 하지만, 어느 누구도 이것을 외면하는 것이 현실이다.

김종건 전문기자 marc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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