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 코리아’, 남북 단일팀의 역사

  • 스포츠동아
  • 입력 2018년 8월 8일 05시 30분


일부 종목이지만 남북 단일팀이 아시안게임에 출전하는 것은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이 처음이다. 사진은 남북 단일팀의 원조격으로 1991년 지바 세계탁구선수권대회 단체전에서 우승한 여자탁구 단일팀.
일부 종목이지만 남북 단일팀이 아시안게임에 출전하는 것은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이 처음이다. 사진은 남북 단일팀의 원조격으로 1991년 지바 세계탁구선수권대회 단체전에서 우승한 여자탁구 단일팀.
서기전 700~800년 전 그리스에서 시작된 고대 올림픽의 위대한 유산은 평화다. 약 2800년 전 그리스인들은 올림픽 기간동안 모두가 무기를 내려놓고 전쟁을 금했다. 올림피아로 모이는 선수와 여행객들을 보호하기 위해 전쟁 뿐 아니라 약탈행위도 엄격히 금지했다. 몇몇 일탈 행위가 있었지만 무거운 응징이 뒤따랐다. 근대 올림픽은 이러한 고대 올림픽의 정신을 계승했다. 스포츠 제전은 그동안 수많은 평화를 선물했다.

분단국가의 단일팀 역사는 생각보다 길다. 통일 전 서독과 동독은 1956년부터 1964년까지 3번의 하계올림픽과 3차례 동계올림픽에 단일팀으로 참가했다. 1964년 도쿄 하계 올림픽을 끝으로 독일 단일팀은 재차 이뤄지지 않았지만 통일을 향한 큰 발걸음이었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는 비슷한 시기에 한국과 북한에도 올림픽 단일팀 출전을 권유했다. 1963년 남북은 스위스 로잔에서 단일팀 구성을 위한 첫 번째 회담을 열었다. 한국전쟁의 상처가 아직 깊이 남아있던 시기였지만 남북은 단일팀에 원칙적으로 합의했다. 그러나 팀 이름에 조선을 넣어야 한다는 북측의 주장과 선수 구성 문제 등에서 좀처럼 합의가 이뤄지지 않았다. 남북은 홍콩에서 2차례 더 회담을 열었지만 결국 서로를 비방하며 등을 돌렸다.

1979년 제35회 평양 세계탁구선수권을 앞두고 남북은 다시 단일팀 구성을 위해 노력했지만 불발됐고, 이후에도 단일팀을 위한 남북의 만남은 비교적 꾸준히 이어졌다.

1984 LA올림픽을 앞두고 대한체육회를 이끌고 있었던 고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 주도로 회담이 이어졌지만 성사되지 않았다. 1988년 서울올림픽을 앞두고 남북은 3년여에 걸쳐 단일팀 구성을 위해 협상했다. 북한은 IOC의 수정안을 최종적으로 거부했고, 올림픽에도 참가하지 않았다.

1963년 시작된 남북 단일팀 논의는 1991년에 이르러서야 첫 결실을 맺었다. 지바 세계탁구선수권대회 단일팀 구성을 위해 판문점에서 만난 남북은 30여분 만에 합의를 이뤄냈다. 팀 ‘코리아’의 명칭으로 꾸려진 남북 단일팀은 현정화(한국), 리분희(북한)가 여자 단체전 우승컵을 함께 들어올리며 전 세계적인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남북은 같은 해 포르투갈에서 열린 세계청소년축구대회에도 단일팀으로 출전해 8강 진출에 성공했다.

하지만 다시 단일팀으로 남북이 만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까지 27년 동안 남북 단일팀은 이뤄지지 않았다. 평창에서 극적으로 여자 아이스하키 단일팀이 꾸려졌다. 대회 시작 직전 성사돼 엔트리 구성과 관련해 잡음도 있었지만 “우리는 하나다”를 외쳤고, ‘손에 손잡고’를 부르며 응원한 관중과 매 경기 선전한 남북의 선수들은 해외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올림픽에서 사상 처음으로 단일팀 출전에 성공한 남북은 화해의 무드를 타고 계속 단일팀을 꾸려나가고 있다. 탁구 대표팀은 5월 할름스타드 세계선수권, 지난달 코리아오픈에서 연속 한 팀을 이뤄냈다.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는 여자농구, 조정, 카누가 단일팀을 파견한다. 아시안게임에 남북 선수들이 한 팀에서 호흡을 이루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경호 기자 rus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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