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없는 ‘야구 흙수저’들… 열정은 다이아몬드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4월 25일 03시 00분


코멘트

‘저니맨외인구단’-‘연천 미라클’… 20경기 치르는 독립리그 개막
주말마다 맥주집 서빙 알바 유지창, 프로서 외면해 유소년 지도 동주봉
만원 관중 앞에 설 그날 꿈꾸며…

‘불미스러운 행동’ 김상현-유창식도… 독립야구리그가 24일 막을 올렸다. 한때 프로 1군에서 맹활약하다 불미스러운 일로 팀을 떠난 김상현(전 kt·왼쪽 사진)과 유창식(전 KIA)이 저니맨외인구단 소속 4번 타자와 1번 타자로 연천 미라클과의 경기에 출전해 타격을 하고 있다. 홍진환 기자 jean@donga.com
‘불미스러운 행동’ 김상현-유창식도… 독립야구리그가 24일 막을 올렸다. 한때 프로 1군에서 맹활약하다 불미스러운 일로 팀을 떠난 김상현(전 kt·왼쪽 사진)과 유창식(전 KIA)이 저니맨외인구단 소속 4번 타자와 1번 타자로 연천 미라클과의 경기에 출전해 타격을 하고 있다. 홍진환 기자 jean@donga.com
“선생님 홈런!”

24일 텅 빈 목동야구장 관중석에서 성동구유소년야구단 학생들이 누군가를 목이 터져라 응원했다. 자기네 야구단 코치가 독립야구단 선수로 출전했기 때문이다.

연천 미라클의 4번 타자 동주봉(26)은 신일고, 단국대 출신으로 프로 구단의 지명을 받지 못했다. 2년 전 군 복무 중에 테스트를 받고 연천 미라클에 입단한 동주봉은 유소년야구단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야구 인생 마지막 꿈인 프로 진출을 고대하고 있다. 휘문고, 한양대 시절 마치 이용규(한화)를 연상케 하는 빠른 발과 타격 센스를 보였던 연천 미라클의 외야수 유지창(28)은 주말마다 맥줏집에서 서빙 아르바이트를 한다. 2011년 트라이아웃을 통해 당시 신생팀 NC에 입단했지만 이듬해 경쟁에서 밀려 팀을 떠났던 유지창은 쉼 없이 자신을 채찍질하자는 각오로 주말을 반납했다.

야구 인생 막바지에 선 그들만의 숨 막히는 리그가 시작됐다. 갖가지 사연으로 프로의 세계에서 밀려난 ‘흙수저’들의 무대인 2017 스트라이크존배 독립야구리그가 첫 출발을 알렸다. 리그에서 단둘뿐인 연천 미라클과 저니맨외인구단이 이날 개막전을 치렀다. 두 팀은 시즌 20번의 맞대결 승부를 벌인다.

승부조작 관련 내용을 자진 신고했던 유창식(전 KIA), 부적절한 행위로 징계를 받았던 김상현(전 kt) 등도 저니맨외인구단 소속으로 출전했다.

관중은 손가락으로 충분히 셀 수 있을 정도였다. 하지만 선수들은 누군가가 언젠가는 알아줄 것이라는 신념 아래 다부지게 경기에 임했다. 경기 전 연천 미라클 출신으로 한화에 입단해 올 시즌 프로 1군 무대에서 맹활약하고 있는 김원석의 모습이 전광판에 나오자 서로 웃고 떠들던 선수들의 표정이 비장해졌다.

선수들은 프로 스카우트가 한 명이라도 자신을 보고 있지 않을까 틈만 나면 몸을 날렸다. 야구 스타 출신 사업가로 한국 최초의 독립리그를 출범시킨 최익성 저니맨외인구단 감독 겸 대표도 비장하기는 마찬가지였다. 1994년 삼성에 입단해 2005년까지 6번 유니폼을 갈아입으며 그라운드의 ‘저니맨’으로 불린 그는 은퇴 후 야구 선수들의 재활에 남은 인생을 걸었다. 최 대표는 “누구 한 명 도와주지 않는 말 그대로의 독립리그가 탄생했다. 기본기부터 남 탓을 하지 않는 인성까지, 진정한 야구 선수가 되는 과정을 선수들에게 알려주고 싶다. 프로 구단들이 필요로 하는 선수 검증 능력과 자생력을 갖춘 독립야구단을 만들 것”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양 팀 선수 유니폼에는 아직 이름도 없다. 선수들이 애지중지 아껴 쓴 나무 배트에 칠해진 코팅은 다 벗겨졌다. 배팅 장갑도 구멍이 송송 뚫렸다. 연천 미라클 이정기 매니저는 “선수들끼리 돌려 입기 편하도록 유니폼에 이름을 새겨 넣지 않았다. 올해 들어서 방망이 제조업체로부터 방망이 100자루를 후원 받아 선수들끼리 나눠 쓰고 있다”고 했다. 이 매니저는 “선수들은 아르바이트를 하며 한 달 팀 회비 60만 원을 내고 어렵게 야구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하지만 언젠가는 만원 관중 앞에 설 날을 기다리며 즐겁게 야구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연천 미라클의 창단을 주도한 박정근 호서대 체육학과 교수도 만감이 교차하는 표정이었다. 박 교수는 “초창기 돈이 없어서 야구를 그만두겠다고 했던 지금 선수들을 보니 한화에서 자리를 잡은 김원석이 떠오른다. 원석이는 2년 전 아무도 관심 없었을 때 한화와의 연습 경기에서 2번이나 백스크린을 때리는 홈런을 치며 한화 관계자들을 사로잡았다”며 “원석이처럼 독립구단에서 묵묵히 자신의 길을 가는 선수들이 프로에서 좋은 본보기로 자리 잡았으면 한다”고 말했다.

유재영 기자 elegant@donga.com
#야구단 코치#독립야구단 선수#동주봉#흙수저#유창식#김상현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