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신수 “낯선 ML서 오승환과 첫 대결 순간 너무 행복했죠”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1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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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리거 추신수 귀국… 그가 말하는 ‘야구, 가족 그리고 봉사’

“아들아 어서 크거라” ‘추추 트레인’ 추신수가 24일 서울 중구 롯데호텔에서 엄지손가락을 들어
보이고 있다. 추신수는 이제 키가 자신과 엇비슷해진 큰아들 무빈 군(11)과 같이 메이저리그에서 뛸 수 있을 때까지 선수 생활을 이어가고 싶다고 말했다. 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아들아 어서 크거라” ‘추추 트레인’ 추신수가 24일 서울 중구 롯데호텔에서 엄지손가락을 들어 보이고 있다. 추신수는 이제 키가 자신과 엇비슷해진 큰아들 무빈 군(11)과 같이 메이저리그에서 뛸 수 있을 때까지 선수 생활을 이어가고 싶다고 말했다. 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야, 니 와 웃었는데? 니 돌부처 아이가?”

 올해 6월 19일 세인트루이스와 텍사스의 메이저리그 경기가 끝난 뒤 추신수(32·텍사스)가 오승환(32·세인트루이스)에게 한 말이다. 그날 8회 등판한 오승환은 추신수가 타석에 들어서자 옅은 미소를 지었다. 돌부처라는 별명을 가진 오승환에겐 어울리지 않는 일이었다. 타석에 들어선 추신수는 생각지도 못한 광경에 웃음을 참느라 혼났다고 했다.

 24일 서울 중구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만난 추신수는 당시 상황을 떠올리며 “승패를 떠나 너무 행복했다. 승환이와는 고교 시절이던 2000년에 맞붙은 적이 있다. 그때는 내가 투수였고, 승환이가 타자였다. 16년 만에 투타를 바꿔 메이저리그에서 만날 거라고 누가 생각이나 했겠나”라고 말했다.

24일 서울 구로구 ‘지구촌 학교’에서 다문화가정 학생들에게 급식 봉사활동을 하고 있는 추신수(왼쪽). 롯데호텔 제공
24일 서울 구로구 ‘지구촌 학교’에서 다문화가정 학생들에게 급식 봉사활동을 하고 있는 추신수(왼쪽). 롯데호텔 제공
 다사다난했던 한 해를 보내고 18일 귀국한 추신수는 제주도와 서울, 부모님이 있는 부산 등을 오가며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이날도 아침부터 보육원과 다문화 자녀 교육기관, 요양원 등을 돌며 봉사활동을 한 그는 “네 번이나 부상자 명단(DL)에 오르며 힘든 시즌을 보냈다. 하지만 8월 왼쪽 팔뚝 뼈 골절을 당하고도 시즌 막판 그라운드로 돌아왔고, 포스트시즌에도 뛰었다. 아쉬움도 많았지만 많은 걸 느끼고 배운 시즌이었다”고 말했다.

 올해 또 하나의 좋았던 기억으로 추신수는 부산 수영초등학교 동기이자 ‘절친’인 이대호(32·전 시애틀)와의 만남을 꼽았다. 4월 6일 시애틀과의 경기에서 1회와 5회 각각 몸에 맞는 볼과 볼넷으로 출루한 추신수는 시애틀 1루수로 출전한 이대호와 그라운드 위에서 만났다.

 추신수는 “그때 둘이 나란히 서있던 사진을 휴대전화에 소중히 저장해 놨다. 사진을 보면 둘이 정말 행복하게 웃고 있다. 우리 둘이 그 자리에 서기까지 얼마나 힘든 과정을 거쳤는지를 잘 알기에 지금 봐도 닭살이 돋는다”고 했다. 그는 “야구에 대한 자존심이 강해서인지 다른 선수를 잘 인정하지 않는다. 하지만 대호는 내가 봐도 야구를 정말 잘한다. 그런 선수가 마이너리그 계약을 거쳐 메이저리거가 됐다는 게 친구로서 너무 자랑스럽다”고 했다.

 추신수는 이대호와 함께 내년 3월 열리는 제4회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출전 선수 명단에 이름을 올려놨다. 2010년 광저우 아시아경기에서 마지막 태극마크를 달았던 그는 “미국에서 한 번 웃을 일을 대표팀에서는 열 번 웃게 된다. 말이 통하는 선수들과 교감하며 운동한다는 건 행복한 일이다. 4년 전 대회엔 못 나갔지만 이번엔 꼭 나가고 싶다. 팀에 강력하게 요청했다”고 했다.

 2013년 말 텍사스와 7년간 1억3000만 달러(약 1535억 원)에 계약했던 추신수는 올해 부상으로 타율 0.242, 7홈런, 17타점밖에 기록하지 못했다. 그는 “아프지만 않으면 잘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다. 솔직히 올해는 트레이닝 룸에서 재활한 기억밖에 없다. 그렇지만 정신적으로 더 성숙해진 한 해였다. 돈과 명예보다 더 소중한 건 우승반지다. 남은 계약 기간에 꼭 한 번 팀의 월드시리즈 우승에 기여하고 싶다”고 말했다.

 야구 선수로서 추신수의 마지막 꿈은 아들 무빈 군과 함께 메이저리그 무대에 서는 것이다. 미국 초등학교에서 야구 선수로 뛰고 있는 무빈 군은 아버지처럼 좋은 몸을 타고났다. 11세인데도 벌써 키가 아버지와 비슷한 무빈 군은 얼마 전 지역 야구대회 결승전에서 6이닝 완투로 승리 투수가 됐다.

 추신수는 “무빈이가 손가락을 다친 상태였다. 손이 아파 제대로 스윙을 못 했다. 그래도 무빈이에게 그라운드 위에서는 절대 티내지 말라고 했다. 결국 아픔을 딛고 이겨내더라. 승패를 떠나 아파도 뭔가를 할 수 있다는 걸 느꼈다는 게 대견했다”고 했다. 추신수는 “텍사스와의 계약이 끝난 뒤 내가 2, 3년을 더 뛰고, 무빈이가 좋은 선수로 성장하면 함께 메이저리그에 설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추신수는 25일 글로벌 아동복지전문기관 초록우산어린이재단에 1억 원을 기부한다. 2014년부터 3년째 이어온 선행이다. 그는 “배고픈 마이너리그 시절 어느 날 스테이크와 랍스터 파티가 열렸다. 알고 보니 메이저리그 선수가 산 거더라. 그래서 나도 매년 스프링캠프 때 마이너리그 선수들을 위해 스테이크 파티를 연다. 기부라는 게 그런 것 같다. 나도 어릴 때 많은 분의 도움을 받아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보답을 생각하지 않고 돌려드리는 게 도리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추신수는 다음 달 초 미국으로 돌아가 일찌감치 내년 시즌 준비에 들어간다.

이헌재 기자 uni@donga.com·강홍구 기자
#추신수#오승환#텍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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