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관중 ‘광적인 응원’ 걱정 더나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0월 1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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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이란전 ‘싫지 않은 변수’ 발생… 경기 당일이 이슬람 성직자 추모일
축제 즐기거나 춤-노래 행위 금지… 선수들 부담주던 응원소리 약해질 듯
이란 “한국팬도 밝은 옷 자제를” 요청

 이란 테헤란의 아자디 스타디움은 ‘방문 팀의 무덤’으로 불린다.

 해발 1300m의 고지대에 위치한 탓에 선수들의 체력 소모가 심한 데다 수만 명의 이란 팬이 펼치는 광기 어린 응원이 상대팀 선수들에게 위압감을 주기 때문이다. 한국 축구 국가대표팀(A대표팀)도 그동안 이란 방문경기에서 2무 4패로 승리를 거둔 적이 없다. 1996년 아랍에미리트에서 열린 아시안컵에서 이란이 한국에 6-2로 대승을 거둔 이후 이란 팬들은 자국에서 한국과 맞붙게 되면 숫자 6과 2를 얼굴에 그려놓고 야유를 퍼붓는다. 세 차례 이란 방문경기에 출전했던 이청용(크리스털 팰리스)은 “수많은 이란 관중은 심리적으로 큰 부담을 느끼게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11일 아자디 스타디움에서 열리는 2018 러시아 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 4차전에서는 이란 팬들의 응원이 과거에 비해 상당히 잠잠해질 것으로 보인다. 경기가 열리는 날이 이슬람 시아파의 추모일인 ‘타수아’와 겹쳤기 때문이다. 이맘(이슬람 성직자) 후세인의 죽음을 추모하는 날인 타수아에는 축제를 즐기거나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는 것이 금지된다. 당초 이란축구협회는 아시아축구연맹(AFC)에 경기 날짜를 앞당겨 달라고 요청했지만, 방문 팀인 한국의 휴식 기간이 짧아진다는 이유로 거절당했다.

 영국 일간지 인디펜던트 등에 따르면 이란의 이슬람 성직자를 중심으로 타수아에 축구 경기를 여는 것에 대해 비난 여론이 일고 있다. 인디펜던트는 “성직자들은 타수아의 신성함이 손상되는 것보다는 몰수패를 당하는 것이 낫다고 주장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보수파 성직자인 아야톨라 모하마드 야즈디는 “이란이 골을 넣었을 때 팬들이 뛰어오르며 기뻐하는 것은 추모일에 어울리지 않는 행동”이라고 말했다.

 대한축구협회 관계자는 “추모일에 경기가 열리는 데다 아자디 스타디움이 지난해 좌석 공사를 하면서 수용 인원이 10만 명에서 8만 명으로 줄어 이란 팬들의 응원이 아무래도 과거에 비해서는 약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인남식 국립외교원 교수는 “타수아는 시아파에게는 굉장히 슬픈 날인 동시에 정체성의 근거가 된 가장 중요한 날”이라며 “정부 차원에서 응원을 통제하지는 않겠지만 가이드라인 정도는 제시할 것 같다”고 말했다.

 이러한 논란은 한국 팬들의 응원에도 영향을 끼칠 것으로 보인다.

 인디펜던트에 따르면 이란축구협회는 주이란 한국대사관에 ‘한국 팬들은 경기 당일 밝은 색 옷을 입지 말고, 큰 소리로 응원하는 것을 자제하길 바란다’고 요청했다. 인 교수는 “타수아는 검은색 옷을 입는 날이기 때문에 ‘붉은 악마’의 상징인 붉은색 옷을 입고 경기장을 찾는 것은 곤란할 수 있다”고 말했다. 대한축구협회 관계자는 “협회 차원에서 응원 자제 등에 대한 공식 요청을 받은 것은 없다. 다만 이란축구협회가 한국대사관에 한국 팬들은 검은 리본을 달아 달라고 당부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정윤철 기자 trigger@donga.com
#광적인 응원#이란#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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