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국의 야구여행] 누워서 친들…이대형의 ‘폼나는 진짜 야구인생’

  • 스포츠동아
  • 입력 2016년 6월 17일 05시 45분


kt 이대형(왼쪽에서 2번째)은 뒤로 누운 듯한 독특한 타격 폼으로 야구인생의 전환점을 맞이했다. 잘 생긴 외모와 어울리지 않는 ‘우스꽝스러운 폼’이지만, 3년 연속 3할을 기록하며 ‘폼 나는’ 야구인생을 만들어가고 있다. 16일 한화전 타격 모습.  수원|김민성 기자 marineboy@donga.com
kt 이대형(왼쪽에서 2번째)은 뒤로 누운 듯한 독특한 타격 폼으로 야구인생의 전환점을 맞이했다. 잘 생긴 외모와 어울리지 않는 ‘우스꽝스러운 폼’이지만, 3년 연속 3할을 기록하며 ‘폼 나는’ 야구인생을 만들어가고 있다. 16일 한화전 타격 모습. 수원|김민성 기자 marineboy@donga.com
‘침대 타법’이라고 다들 흉내내지만
달아나는 상체 통제 위한 고육지책
세상 편견 깨고 3년 연속 3할 타율


누구나 ‘폼 나게’ 살고 싶은 세상이고, 누구든 ‘폼 잡고’ 살고 싶은 인생이다. 요즘 가장 뜨거운 배우 조진웅도 한 광고에서 “어릴 때부터 내 좌우명은 딱 하나, 폼 나게 살자! 그래서 배우로 살고 싶었다”고 외쳤다.

그런데 폼이 좋아야만 폼 나게 사는 것만은 아니다. ‘슈퍼소닉’ kt 이대형(33). 오히려 망가진 폼으로, 우스꽝스러운 폼으로, 야구인생의 전환점을 맞이했다. 잘 생긴 얼굴에 잘 빠진 몸매. ‘폼 좀 잡을 것 같은’ 겉모습이지만, 그는 프로야구 역사상 누구도 시도하지 않았던 장르의 독특한 타격폼을 들고 나와 새로운 야구인생을 만들어가고 있다.

2014년 FA(프리에이전트)로 KIA로 이적하면서 우연히 창안해낸 타격폼으로, 그해 3할(0.323)을 치더니, kt로 이적한 지난해(0.302)에 이어 올해도 0.328의 고타율(6월16일 현재)을 기록 중이다. 2003년 LG에 입단해 2013년까지 11년간 통산타율 0.261을 기록했던 그는 최근 3년 연속 3할 타율을 기록하면서 “이대형 타격은 기대하지 말라”던 세상의 판정을 뒤엎고 있다. 통산도루 468개(역대 4위)를 기록한 빠른 발이 아니라, 타격으로 주목 받는다는 건 예전엔 상상하지 못했던 장면이다.

그의 타격폼은 스탠스부터 파격적이다. 왼발은 타석의 네모 칸 왼쪽 아래 꼭짓점에 두고, 오른발은 오른쪽 위 꼭짓점을 향한다. 극단적인 오픈 스탠스. 엉덩이를 뒤로 뺀 채 두 다리를 대각선으로 한껏 벌린 ‘쩍벌남’은 이것도 모자라 마치 ‘림보게임’을 하듯 상체마저 포수 쪽으로 잔뜩 눕힌다. 누워서 친다고 누구는 ‘침대 타법’이라고 하고, 누구는 ‘드르렁 타법’이라고도 한다. 절친한 선배 이진영(kt)은 심심할 때면 그의 폼을 따라하며 놀리고, 다른 팀 선수들도 그를 만나면 타격폼 흉내로 인사를 대신한다. 심지어 올 초 걸그룹이 수원kt위즈파크에 시구와 시타를 하러 와서 이대형의 타격폼을 흉내 내 모두의 배꼽을 빠지게 했다.

“웃기죠? 제가 봐도 우스꽝스러운데 남들이 보면 더 웃기겠죠. 기분 나쁘냐고요? 전혀요. 요즘 야구장 밖에서 꼬마들이 저를 보고 제 타격폼 흉내 내면서 인사할 때가 많아요. 저만의 캐릭터가 만들어졌으니 오히려 기분 좋죠. ‘서건창’ 하면 그만의 타격폼이 있고, ‘이용규’ 하면 그만의 타격폼이 있잖아요. 저로선 제가 살아남을 길을 찾은 거죠.”

이대형의 말처럼, 김성한은 ‘오리궁둥이 타법’, 박정태는 ‘흔들 타법’으로 개성을 만들었다. ‘만세 타법’으로 한 시대를 풍미한 양준혁 MBC스포츠플러스 해설위원은 “타격에 정답은 없다. 나도 한때 ‘개폼이다’는 평을 듣기도 했다”면서 “2년 전 이대형이 누워서 치는 타법을 들고 나왔을 때 흥미롭게 지켜봤다. 옆으로 눕는다는 건 공을 옆으로 본다는 것이다. 배리 본즈도 타격 준비자세에서 고개를 옆으로 비스듬히 기울이지 않았나. 공을 오래 보고, 배트 발사각도를 상향조정하기 위한 고민과 노력의 흔적이다. 중요한 것은 폼이 아니라 공이 맞는 순간 힘의 전달이다”고 설명했다.

지금 이대형의 타격폼은 타격할 때마다 먼저 앞쪽으로 달아나는 상체를 통제하기 위한 고육지책이었다. 절박함 속에서 변신을 선택한 것일까. 그러나 그는 이에 대한 질문에 의외로 고개를 저었다.

“프로야구 선수 중에 절박하지 않은 선수는 없어요. 과거 LG 있을 때 저하고 심수창(현 한화) 형하고 야구를 못하니까 욕도 참 많이 얻어먹었어요. 그러나 보이는 게 전부는 아닙니다. 누구보다 절박하게 야구를 했어요. 어느 날 경기 후 밤늦게 잠실구장에서 혼자 방망이를 돌리다 나가는데, 수창이 형도 어둠 속에서 혼자 펜스에 공을 던지면서 폼을 만들고 있더라고요. 공을 받아줄 사람이 없으니까. 나를 보고 나서는 겸연쩍었는지 ‘난 공 많이 던지는 게 좋다’며 웃더라고요. 사람들은 그런 건 안 보니까 그라운드에서 보이는 모습과 기록만 보고 평가하죠. 1군 선수든, 2군 선수든 절박하지 않은 선수가 있을까요. 저도 절박하게 야구를 하지 않았다면 프로에서 14년째 이렇게 야구를 하고 있지 못하죠. 어릴 때도 절박하게 야구했고, 지금도 이 우스꽝스러운 타격폼으로 절박하게 야구해요. 앞으로도 절박하게 야구를 할 거고요. 누워서 치면 어떻고, 엎드려서 치면 어떻습니까. 폼보다 중요한 건 야구를 잘 하는 거죠. 프로야구에 저 같이 치는 선수 한 명쯤 있어도 괜찮잖아요.”

‘폼 나게 산다’는 건 남의 눈을 의식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길을 찾기 위해 열정을 갖고 덤비는 일인지 모른다. 남들이 볼 땐 ‘망가진 폼’이지만, 자신만의 빛깔만 있다면 ‘폼 나게’ 야구할 수 있다는 걸 이대형이 증명하고 있다.

“남 눈치 너무 보지 말고 나만의 빛깔을 찾으세요. 당신은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사람입니다.”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의 저자 혜민스님이 해준 말이다.

이재국 기자 keyston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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