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무표정한 모습으로 ‘침묵의 암살자’라고 불린 그의 눈가가 촉촉이 젖어들었다. 어깨를 짓누르던 무거운 짐 하나를 내려놓았다는 벅찬 감격 때문인지 우승 소감을 말하는 목소리는 떨리기까지 했다. 3일 영국 스코틀랜드의 트럼프 턴베리리조트 에일사코스(파72)에서 끝난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 시즌 4번째 메이저대회인 브리티시여자오픈에서 우승한 박인비(27·KB금융그룹)였다.
박인비는 이날 열린 4라운드에서 이글 1개, 버디 7개, 보기 2개를 묶어 7언더파 65타를 치며 최종 합계 12언더파 276타를 기록해 전날 3타차 선두였던 고진영(20·넵스)을 3타차로 제쳤다. 이로써 박인비는 아시아 최초이자 세계 여자 골프 사상 7번째로 커리어 그랜드슬램을 완성했다.
처음으로 메이저 타이틀을 따냈던 2008년 US여자오픈 당시에도 흘리지 않았던 눈물을 보일만큼 이날 승리는 박인비에게 감동이었다. 20세도 안돼 메이저 첫 승을 거뒀던 기쁨은 오래가지 않았다. 그 후 4년 가까이 미국LPGA투어에서 무관에 그치며 골프를 그만둘 위기에 빠졌던 그는 2011년 프로골퍼 출신 남기협 씨와 약혼한 뒤 재기에 성공했다.
2013년 나비스코챔피언십과 LPGA챔피언십, US여자오픈까지 메이저 3연승을 거두면서 브리티시여자오픈 트로피는 커리어 그랜드슬램의 하나 남은 퍼즐이 됐다. 2013년과 지난해 브리티시오픈에서 쓰라린 실패를 겪은 뒤 올해 3번째 도전에 나선 그에게 이번에도 정상 가는 길은 쉽지 않았다. 나흘 동안 악천후와 싸우며 72홀을 도는 여정 속에서 4라운드 한때 선두에 4타차까지 뒤졌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았고, 70번째 홀에서야 처음 오른 단독 선두 자리를 끝까지 지켰다. 경기 후 전화 통화에서 박인비는 “커리어 그랜드 슬램 벽이 너무나 크게 느껴졌다. 몇 번 좌절도 했다.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긴 한가 이런 생각도 들었다. 이루기 전에는 너무나 크고 힘들게 느껴졌던 일들이 해내니까 마치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진다”고 말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이날 박인비 선수에게 축전을 보내 “커리어 그랜드슬램을 달성한 것을 축하한다. 앞으로도 변함없는 열정으로 좋은 결실을 맺어 국민에게 기쁨과 희망을 선물해 주기 바란다”고 격려했다.
박인비가 시즌 4승째를 거두면서 올 시즌 한국 선수는 LPGA 역대 신기록인 12승을 합작했다. 박인비는 7일 제주에서 개막하는 제주 삼다수 마스터스 출전을 위해 4일 귀국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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