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여자 농구 전설 박신자의 작은 울림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7월 7일 16시 5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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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여자농구가 잊어버린 게 많았다. 그걸 이제야 알겠네.”

강원도 속초 청소년수련관에서 열리고 있는 여자프로농구 여름리그를 관전하던 한 70대 원로 농구인이 낮은 목소리로 탄식했다. 60년 농구 인생 동안 이런 착잡한 감정은 처음이라고 했다.

그동안 후보 선수들이 주로 출전한 여름리그는 농구인들에게도 관심을 받지 못했다. 그러나 이번 대회는 분위기가 다르다. 6일 대회 첫 경기에서 맞붙은 신한은행과 국민은행은 4쿼터 내내 치열한 접전을 벌인 끝에 두 팀 모두 80점을 넘기며 박빙의 승부를 펼쳤다.

1쿼터 시작 전 관중석에서 느긋한 표정으로 앉아 있던 방열 대한농구협회 회장과 박한 부회장, 이인표 전 KBL패밀리 회장, 김인건 전 태릉선수촌장 등 70대 농구 원로들이 나누던 대화를 멈출 정도로 박진감이 넘쳤다. 경기를 보며 양 팀 전력 분석을 하던 박종천 하나외환 감독은 “야구로 치면 가장 재미있다는 케네디 스코어(8-7)에 해당하는 경기”라고 했다.

대회분위기가 이렇게 바뀐 데는 1960년대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여자 농구 스타 박신자 씨(74)의 일침이 큰 역할을 했다. 이번 대회는 박 씨를 기억하자는 취지로 한국여자농구연맹(WKBL)이 ‘박신자컵 서머리그’로 이름을 붙였다. 미국에서 대회를 축하하기 위해 일시 귀국한 박 여사는 6일 개막식에서 까마득한 후배들의 환영을 받고 감격에 젖었다. 그러면서도 쓴 소리를 아끼지 않았다. “국제대회에서 상위 순위에 들 수 있을 만큼 세련된 기술이나 능력은 아닌 것 같다” “요즘 선수들은 지도자에게 질문을 안 하더라” 등 따끔한 지적을 쏟아냈다. 농구 원로들과 WKBL 관계자, 각 팀 지도자, 선수들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한 감독은 “가슴이 먹먹해졌다. 내가 한국 여자 농구 발전을 막지나 않았나 되돌아보게 되더라”고 말했다.

박 여사는 대회에 자신의 이름을 붙여 준 것에 대해 “인생에 보너스를 받은 것 같다”며 고마워했다. 하지만 더 큰 고마움을 느껴야할 건 한국 여자 농구다.

속초=유재영기자 elegan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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