빙판 ‘金벅지’, 땅에선 두 바퀴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2월 16일 03시 00분


사이클 효과 톡톡히 본 이승훈

2010년 밴쿠버 겨울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 남자 1만 m 금메달리스트이자 올해 소치 올림픽 남자 팀 추월 은메달리스트인 이승훈(왼쪽)은 사이클 선수 못지않은 심폐 지구력을 자랑한다. 올 시즌을 대비해 체력훈련중이던 이승훈이 10월 그의 도우미를 자처한 한국 사이클의 전설적인 스타 김동환 프로사이클 대표와 함께 라이딩을 하고 있다. 김미옥 기자 salt@donga.com
2010년 밴쿠버 겨울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 남자 1만 m 금메달리스트이자 올해 소치 올림픽 남자 팀 추월 은메달리스트인 이승훈(왼쪽)은 사이클 선수 못지않은 심폐 지구력을 자랑한다. 올 시즌을 대비해 체력훈련중이던 이승훈이 10월 그의 도우미를 자처한 한국 사이클의 전설적인 스타 김동환 프로사이클 대표와 함께 라이딩을 하고 있다. 김미옥 기자 salt@donga.com
소치 겨울올림픽 2관왕인 장거리 스피드스케이팅 황제 스벤 크라머르(28·네덜란드)는 ‘자전거 마니아’다. 취미인 사이클은 그의 훈련 프로그램에서도 상당 부분을 차지한다. 지난달 서울에서 열린 국제빙상경기연맹(ISU) 월드컵 출전을 위해 방한한 그는 한국 유망주들을 대상으로 한 일일 클리닉에서도 “장거리 종목을 잘하려면 사이클 훈련을 더 많이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한국 장거리 스피드스케이팅의 간판 이승훈(26·대한항공·사진)도 사이클을 탄다. 소치 겨울올림픽 남자 팀 추월에서 은메달을 딴 그는 새 시즌을 준비하면서 자전거의 매력에 푹 빠졌다.

‘살아 있는 전설’ 크라머르를 벤치마킹해 보자는 게 시작이었다. 5월 도로 사이클을 구입해 혼자 한강 자전거 도로를 달렸다.

한국 사이클의 전설적인 스타 김동환 프로사이클 대표(52)와의 만남은 이승훈에게 또 다른 길을 열어줬다. 이승훈은 자전거를 고치러 우연히 김 대표의 가게를 찾았다가 의기투합했다. 일 년 365일 중 300일 이상 장거리 자전거를 타는 김 대표와 함께 사이클을 타기 시작한 것이다.

장거리 스피드스케이팅 선수에게 도로 사이클이 도움이 된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문제는 한국의 도로 사정과 운전 문화 때문에 안전을 보장할 수 없다는 것. 하지만 이 분야의 전문가인 김 대표와 동행하면서 안전하고 효과적으로 훈련을 할 수 있게 됐다. 이번 시즌이 시작된 11월 이전까지 둘은 매주 서너 차례 서울에서 경기 양평군 양수리나 가평군 유명산까지 왕복 70∼130km를 달렸다. 이승훈은 “장거리 스피드스케이팅 훈련은 지루하기 때문에 가끔 집중력이 흐트러질 수 있다. 하지만 바람을 느끼며 세상을 가르는 자전거는 3, 4시간을 타도 재미있게 할 수 있다. 산과 언덕을 넘을 때면 힘들기도 하지만 그만큼 성취감을 느낄 수 있었다”고 했다.

이승훈은 봄부터 가을까지 쏟은 땀의 보상을 요즘 들어 톡톡히 받고 있다. 이승훈은 13일 네덜란드 헤이렌베인에서 열린 월드컵 4차 대회 팀 추월에서 김철민(22·한국체대), 고병욱(24·의정부시청)과 함께 금메달을 수확했다. 한국 빙속이 월드컵 대회 이 종목에서 금메달을 딴 것은 처음이다. 15일 열린 매스스타트에서는 40점을 얻어 요릿 베르흐스마(네덜란드·70점)에 이어 은메달을 추가했다.

그럼 ‘사이클 선수’로서의 이승훈은 어떨까. 김 대표는 “원체 지구력이 좋더라. 심폐 기능이 좋아서 언덕을 올라갈 때는 나도 따라가기 힘들었다”고 했다.

이승훈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8월 그는 투르 드 코리아 예선으로 열린 동호인 대회에 출전했다. 그는 “솔직히 충격을 받았다. 열심히 달린다고 달렸는데 중년 아저씨들이 나를 훌쩍 추월하더라. 스케이트를 시작한 이후 그렇게 낮은 순위는 처음 해 봤다. 더 열심히 타서 내년에는 사이클에서도 좋은 성적을 내고 싶다”며 웃었다.

빙속 선수 출신으로 사이클 선수로도 성공한 대표적인 인물로는 에릭 하이든(56)을 꼽을 수 있다. 1980년 레이크플래시드 겨울올림픽에서 전 종목(500m, 1000m, 1500m, 5000m, 1만 m)을 석권하며 5관왕에 오른 그는 은퇴 후 사이클 선수로 변신했다. 1985년 전미 프로사이클 챔피언십에서 우승했고, 1986년에는 세계적인 도로 사이클 대회인 투르 드 프랑스에도 출전했다. 겨울올림픽에서만 이미 3개의 메달(2010년 밴쿠버 올림픽 금 1, 은 1, 2014년 소치 올림픽 은 1)을 딴 이승훈이라고 그렇게 되지 말라는 법은 없다.

이헌재 기자 uni@donga.com
#이승훈#소치 겨울올림픽#스피드스케이팅#자전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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