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캡틴 박지성, 세 남자가 있어 가능했다

  • 스포츠동아
  • 입력 2014년 5월 16일 06시 40분


박성종씨-허정무 감독-히딩크 감독(왼쪽부터). 스포츠동아DB
박성종씨-허정무 감독-히딩크 감독(왼쪽부터). 스포츠동아DB
정육점 차려 아들을 키운 아버지
무명의 박지성 대표팀으로 이끈 허정무
세계로 날게 한 히딩크


홀로 꽃을 피우는 씨앗은 없다. 박지성(33)과 세 남자의 각별한 인연은 ‘축구 영웅’이 탄생하기까지 든든한 밑거름이 됐다.

13일 전격적으로 은퇴를 선언한 박지성은 어린시절부터 될 성 부른 떡잎이었다. 수원 세류초 4학년 때부터 본격적으로 축구선수의 길을 걸은 뒤 6학년이던 1993년 세류초를 전국대회 준우승으로 이끌었다. 그해 ‘차범근 축구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그러나 청소년기에는 작은 키 때문에 고전했다. 안용중을 거쳐 수원공고에 진학한 박지성의 키는 164cm에 불과했다. 부친 박성종(JS파운데이션 상임이사) 씨는 개구리즙 등 몸에 좋다는 각종 보양식을 챙겼다. 아들에게 질 좋은 고기를 먹이기 위해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정육점을 차린 것 또한 잘 알려진 얘기다. 결국 박지성의 키는 1년 사이에 12cm나 자랐다. 아버지는 아들이 세계 최고의 선수가 될 수 있는 자양분을 제공했다.

박지성은 1999년 명지대에 진학했지만 유명한 선수는 아니었다. 그러나 허정무(대한축구협회 부회장) 감독과의 운명적 만남이 그를 대표선수의 길로 이끌었다. 당시 2000시드니올림픽대표팀은 명지대와 연습경기를 치렀다. 올림픽대표팀 사령탑이던 허 감독의 눈에 박지성의 탄탄한 플레이가 들어왔다. 결국 박지성은 2000년 4월 동대문운동장에서 열린 라오스와의 2000아시안컵 1차 예선에서 A매치 데뷔전을 치렀다. 이어 6월 마케도니아와의 LG컵 4개국 친선대회에서 A매치 첫 골을 기록했고, 시드니올림픽에도 당당히 출전했다. 이후 일본 J리그에 진출했다.

박지성은 2002한일월드컵을 통해 한국축구를 대표하는 선수로 성장한다. 거스 히딩크 감독은 당시만 해도 미완의 대기였던 박지성을 한일월드컵 최종엔트리에 포함시켰고, 주전으로 기용했다. 박지성은 월드컵에 앞서 잉글랜드, 프랑스와 치른 평가전에서 연속골을 터뜨리며 이름을 알렸다. 이어 포르투갈과의 조별리그 3차전에서 결승골을 넣으며 한국의 사상 첫 월드컵 16강을 이끌었다.

히딩크 감독은 월드컵 이후 박지성을 네덜란드의 명문 PSV아인트호벤으로 불러들였다. 박지성은 팀의 주축들이 대거 이탈한 2004∼2005시즌 아인트호벤이 리그 정상에 오르는 데 기여했다. 결국 2005년 7월 세계 최고의 구단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 입단하며 한국인 최초의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거가 됐다. 히딩크 감독은 박지성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입단 후 벤치 신세를 면치 못하자 인터뷰를 통해 “알렉스 퍼거슨 감독은 박지성에게 충분한 기회를 줘야 한다”며 강력한 지원사격을 펼치기도 했다.

전영희 기자 setupman@donga.com 트위터@setupman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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