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준의 풀스토리] “가진 건 어깨뿐” 서른일곱 임재철의 홈 송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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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3년 10월 30일 07시 00분


두산 임재철. 스포츠동아DB
두산 임재철. 스포츠동아DB
우승 여부를 떠나서 2013년 가을야구에서 가장 빛난 팀은 두산이지 않을까요? 준플레이오프(준PO)부터 한국시리즈(KS)까지 이 팀을 취재하면서 가장 강렬하게 와 닿은 부분은 ‘필연성’이었습니다. 엔트리에 포함된 한 명 한 명이 모두 왜 자신이 그 자리에 있어야 하는지를 보여줬습니다. 그러나 모두가 다 주연일 수는 없습니다.

두산 임재철(사진)은 넥센과의 준PO 동안 단 한 타석에도 출전하지 못했습니다. 외국인투수에 유달리 강했지만, LG와의 PO 2차전 때도 제외됐습니다. 그러나 필요 없는 선수라고 여기지 않고, ‘아직 내 차례가 돌아오지 않았다’고 생각했습니다. PO 3차전 3차례의 출루와 득점, 그리고 PO 전체의 판도를 가른 순간으로 기억될 9회 홈 송구는, 포기하지 않고 준비하는 마음이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어느덧 야구계에 비슷한 또래는 홍성흔(두산), 이승엽(삼성), 박진만(SK) 등이 남아있을 뿐입니다. “가진 것이라곤 어깨 하나뿐”인 임재철이 지금까지 버텨온 것은 자기 본분을 잊지 않는 성실함 덕분입니다. 굳이 나서지 않아도 제 자리에서 제 할 일을 다 하면 구단도, 감독도, 후배들도 알아줄 것이라고 믿었는데 정말 여기까지 왔네요. 이승엽, 홍성흔에 비해 위대한 선수는 아닐지라도 더 오래하는 선수는 되고 싶습니다.

경성대 졸업 후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의 한파를 뚫고 1999년 롯데에 입단해 바로 주전을 꿰찼고, KS까지 나갔죠. 돌이켜보면 가장 빛나던 순간이었습니다. 그 후 2002년 삼성, 2003년 한화를 거쳐 2004년 두산에 오기까지 해마다 팀이 바뀌었고, 주전에서 백업으로 위치도 바뀌어갔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삼성에서 우승을 경험해봤지만 어쩐지 자신의 우승이 아닌 것 같았습니다.

두산은 숱하게 KS에 올라갔지만 임재철이 함께 했던 순간은 2005년뿐입니다. 그 뒤의 시간은 병역복무 시기였죠. 서른 살에 공익근무요원을 하고 돌아오니 서른세 살에 시즌을 맞이해야 했습니다. ‘나이 먹어서 안 된다’는 소리를 듣고 싶지 않아 하루 근무가 끝나면 헬스장에서 살다시피 했던 시간입니다. 지금도 후배들보다 먼저 야구장에 나와 땀을 흘리는 이유도 세월에 순순히 지고 싶지 않아서죠.

사실 KS 2차전 도중 주루플레이를 하다 왼 손목을 다쳐 타격이 어려운 상태입니다. 그래도 대수비, 대주자 등 할 것은 많습니다. 번트라도 대신 댈 상황이 올까봐 번트 훈련은 해둡니다. 임재철의 소원은 은퇴 전까지 10경기만이라도 연속해서 주전으로 뛰어보는 것입니다. 서른일곱 살 신인 같은 임재철의 햇빛 쏟아지는 날이 14년 만에 다시 찾아왔습니다.

잠실|김영준 기자 gatzby@donga.com 트위터 @matsri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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