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 2012]‘메달 밭’ 한국 양궁의 숨은 이야기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8월 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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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양궁은 우아하게 호수 위를 떠다니는 백조를 닮았다. 겉으로는 더없이 평온하지만 수면 밑의 다리는 죽을힘을 다해 움직이고 있다. 세계 최고를 지키기 위한 노력은 일반인이 상상하는 이상이다.

이번 런던 올림픽에서도 여자는 단체전과 개인전을 석권하는 등 ‘양궁 세계 최강’의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했다. 우승하는 순간도 극적이었지만 그 메달을 따기까지의 과정은 더욱 숨 가빴다. 한국 양궁의 숨은 이야기들을 소개한다.

○ 내분으로 자멸할 뻔했던 여자팀

최현주-이성진-기보배로 구성된 여자대표팀은 올림픽 단체전 7연패의 위업을 달성했다. 누구도 금메달을 의심치 않았지만 내부 분위기는 사뭇 달랐다.

맏언니 최현주의 극심한 부진이 발단이었다. 최현주의 자신감 상실은 팀 전체에 엄청난 악영향을 끼쳤다. “최현주 때문에 금메달을 날리게 생겼다”는 분위기가 싹트면서 여자대표팀엔 대화가 사라졌다. 특히 8년 만에 금메달에 도전하는 이성진은 최현주와 아예 말을 하지 않고 지냈다.

지난달 30일 열린 단체전 때 최현주는 “오늘 못 쏘면 여기서 죽어버리겠다”며 대회장에 들어섰다. 이 절실함은 극적인 드라마를 만들어냈다. 중국과의 결승에서 8발 중 5발을 10점 과녁에 명중시키며 금메달을 이끈 것이다. 쓰러질 뻔한 한국 여자 양궁을 최현주가 살렸다. 그날 저녁 최현주와 이성진은 서로를 부둥켜안고 울었다. “미안해, 그리고 고마워.” 그들의 대화가 다시 시작됐다.

○ 코칭스태프는 초죽음


이런 상황에서 감독 코치들의 맘이 편했을 리 없다. “최현주를 교체하라”는 압력에 버티면서 선수들을 다독여야 했으니 그 맘고생이야 이루 말할 수 없다.

장영술 양궁 총감독은 요즘 신경안정제를 먹지 않으면 잠을 못 잔다. 마음은 괴롭지만 선수들 앞에서는 여유 있는 듯 웃어야 하는 것도 고역이었다. 30일 단체전 금메달을 땄을 때 장 감독이 울음을 터뜨린 것도 이런 이유였다. 장 감독은 “꼭 누가 와서 금메달을 빼앗아 갈 것만 같았다. 금메달을 지켜야 한다는 생각에 한 잠도 못 잤다”고 털어놨다. 백웅기 여자감독 역시 극심한 스트레스로 오른 위쪽 어금니가 저절로 빠져 버렸다.

[채널A 영상] 한국 양궁 괴롭히던 ‘세트제’는 무엇?

○ 7만 원짜리 도시락 먹고 힘낸 선수들

한국 양궁이 쾌거를 이룬 요인 중 하나는 대한양궁협회의 전폭적인 지원이다. 선수촌에서 양궁장인 로즈 크리켓 그라운드까지는 버스로 약 한 시간이 걸린다. 선수들이 지칠까 봐 협회는 양궁장 근처의 특급호텔을 잡아 선수들이 묵도록 했다.

입맛을 잃을까 봐 매끼 한국 식당에서 도시락을 시켰는데 개당 40파운드(약 7만 원)짜리였다. 선수들이 “중국음식이 먹고 싶다”고 하자 온 동네를 수소문해 곧바로 자장면을 대령한 일도 있었다. 또 응원에서 뒤질세라 대회 기간에 3514장의 티켓을 구입해 한인회와 유학생들에게 나눠줬다. 표값만 무려 3억 원가량 들었다.

정의선 양궁협회장
정의선 양궁협회장
대한양궁협회장을 맡고 있는 정의선 현대자동차 부회장은 아예 열흘간 회사를 비웠다. 시간을 분 단위로 쪼개 쓸 정도로 바쁜 대기업 오너지만 대회 개막 3일 전인 25일 런던에 와 3일 남자 개인전까지 내내 경기장을 지켰다. 2일 여자 개인전 8강전에서 이성진이 탈락하자 직접 다가가 어깨를 두드려주며 “최선을 다했으니 괜찮다”고 위로하기도 했다.

30일 단체전 금메달을 딴 후 여자선수들은 정 회장에게 달려가 차례로 포옹을 했는데 이는 마음에서 우러나온 행동이었다. 최현주는 “말과 행동에 진심이 담겨 있는 걸 선수들이 느낀다. 회장님은 우리와 같이 밥 먹고 맥주 마시고 얘기를 들어주는 분”이라고 했다. 이성진은 “회장님이라기보다는 아빠 같은 존재”라고 했다.

런던=이헌재 기자 uni@donga.com
#양궁#런던 올림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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