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세 골퍼, 꽁지머리하고 시가 물고 미겔 앙헬 히메네스는 자유로운 영혼이다. 다른 프로 선수와 다르게 시가와 와인, 위스키를 즐기고 꽁지머리를 하고 다닌다. 골프도 거의 독학으로 익혀 그만의 스타일로 스윙을 한다. 2010년 7월 프랑스 베르사유에서 열린 프랑스 오픈에서 우승한 뒤 트로피에 앉아 시가를 물고 밝게 웃는 히메네스. AP 연합뉴스
그는 오후의 햇살을 만끽하고 있었다. 왼손에 든 시가에선 짙은 향내가 풍겼다. 얼마나 오랫동안 같은 자세로 일광욕을 즐겼던지 시가 끝에서 재가 떨어지면서 옷 위로 쏟아졌다. 그는 주변을 둘러보더니 사람 좋은 웃음과 함께 “매일 있는 일이니 신경 쓰지 말라”고 했다.
국내에서 열리는 유일한 유럽투어인 발렌타인 챔피언십 2라운드가 열린 27일 경기 이천 블랙스톤GC. 당초 미겔 앙헬 히메네스(48)를 만나기로 한 곳은 클럽하우스 내 인터뷰실이었다. 하지만 그는 “날씨가 너무 좋아서 밖으로 나가야겠다”고 했다. “이런 날엔 야외에서 시가를 피워야 한다”는 말도 덧붙였다. 그는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선수였다.
○ 즐겨라, 오늘이 마지막인 것처럼
그는 인터뷰 내내 시가를 맛있게 물고 있었다. “향기가 좋다”고 하자 “향보다는 맛이 더 좋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20여 분에 걸친 인터뷰 동안 그는 정말 많이 웃었다. 그의 입에서 가장 많이 나온 말도 ‘엔조이(Enjoy·즐기다)’였다.
그는 색다른 매력을 가진 골퍼다. 대부분의 프로 골퍼와 달리 그는 시가와 와인을 즐긴다. 때로는 위스키도 마신다. 그리 크지 않은 키에 배까지 볼록 튀어나온 아저씨 몸매지만 당당하게 꽁지머리를 하고 다닌다. 스피드광으로 빨간색 페라리를 모는 게 취미다. “골프도 중요하지만 인생은 더 중요하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골프도 자유분방하게 친다. 그는 15세에 처음 골프를 배웠다. 고향 스페인 말라가의 한 골프연습장에서 공을 줍고 캐디를 하면서 거의 독학으로 스윙을 익혔다. 그의 코치는 열두 살 위의 친형이었다. 교과서적인 스윙을 구사하는 다른 선수들에 비해 비거리는 짧아도 어프로치와 퍼트는 훨씬 감각적이다. 그랬던 그가 40대 후반의 나이에도 여전히 왕성하게 선수 생활을 이어갈 수 있는 이유는 바로 인생과 골프를 즐기기 때문이다. 그는 “골프에 내 인생을 바쳤고, 골프 덕분에 나는 인생의 모든 즐거움을 누리고 있다. 그러니 어찌 골프를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나”라고 했다.
○ 인생은 마흔부터
그는 이른바 중년의 희망이기도 하다. 18세 때인 1982년 프로로 전향한 그는 29세에야 유럽투어 첫 우승을 차지했다. 그렇지만 선수 생활의 전성기는 40세가 되면서부터였다. 2003년 이후에 거둔 승수만 12승이다. 46세 때인 2010년에는 유럽투어에서 3차례나 정상에 올랐다.
그는 “유명해지거나 돈을 벌기 위해 골프를 치는 게 아니다. 그냥 필드에서 어린 선수들과 경쟁하는 것 자체가 기쁨이다. 요즘도 첫 라운드 1번홀에서 첫 티샷을 할 때면 뭉클한 것이 가슴속에서 끓어오른다”고 했다. 미국프로골프(PGA)투어 출전 자격이 있지만 그는 “난 유럽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유럽을 무대로 뛴다.
그렇다면 그는 과연 언제까지 선수 생활을 이어갈까. 그는 “젊은 선수들과 겨뤄 이길 자신이 있는 한 이 무대에서 계속 뛸 것”이라고 했다. “몸이 예전 같지 않아 요즘은 러닝과 웨이트트레이닝도 열심히 한다”고 했다.
지난해 이 대회에서 준우승을 차지한 그는 이날 2라운드에서 4언더파를 몰아치며 중간합계 4언더파 140타로 공동 4위에 올랐다.
전날 부진했던 배상문은 4타를 줄여 중간합계 1언더파로 공동 18위, 1타를 줄인 양용은은 중간합계 1오버파로 공동 37위에 자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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