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무영 “12년간 문 두드려 日야구 벽 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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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3월 2일 07시 00분


남들이 가지 않았던 고난의 길을 택한 김무영(소프트뱅크). 그는 힘겨웠던 시간을 마치고 이제 자신의 꿈을 펼칠 수 있길 소망하고 있다. 미야자키(일본)|홍재현 기자
남들이 가지 않았던 고난의 길을 택한 김무영(소프트뱅크). 그는 힘겨웠던 시간을 마치고 이제 자신의 꿈을 펼칠 수 있길 소망하고 있다. 미야자키(일본)|홍재현 기자
소프트뱅크 1군서 활약 중인 한국인 투수 김무영 스토리

‘고시엔’ 출전 목표로 16세에 바다 건너
대학-독립리그-2군 거치며 시련 견뎌

“편견 이겨내는게 운동보다 더 힘들어
FA 통하지 않고 日서 성공 보여줄 것”


한국 선수들이 일본무대에 진출하는 경우는 대부분 프리에이전트(FA)를 통해서다. 그러나 일본 소프트뱅크에 몸담고 있는 김무영(27)은 달랐다. 무려 12년간 문을 두드려 일본야구의 높은 벽을 허물었다. 좌절할 때도 많았다. 하지만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다. 일본 미야자키 소프트뱅크 1군 훈련장에서 만난 그는 “나의 야구인생은 지금부터 시작”이라며 “시작을 했으니 한 번 끝까지 가보겠다”고 이를 악물었다.

‘고시엔을 목표로 한 번 뛰어보자!’

한국나이로 열여섯에 무작정 짐을 꾸렸다. 말 한 마디 안 통하는 낯선 땅에서 ‘고시엔’이라는 목표 하나로 생활을 시작했다. 하지만 일본야구의 높은 벽을 실감할 때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고등학교 졸업 후 미지명의 아픔을 안고 대학에 진학했다. 유일한 희망은 일본 프로구단 스카우트들이었다. 150km에 육박하는 빠른 볼을 가진 한국인 투수를 주목했고 대학 4학년 때 어깨를 다치면서 또 한 번의 고배를 마신 그에게 “독립리그에서 몸을 만들고 있으라”고 설득했다.

그는 2008년 일본 독립리그 후쿠오카 레드와블러스에서 데뷔했다. 초반 부상으로 휴지기가 있었지만 복귀 후 중간계투로 35경기에 나가 17세이브, 방어율 0.41이라는 호성적을 거뒀다. 이듬해는 명문구단 소프트뱅크에 6순위로 지명됐다. 하지만 시련은 계속됐다. 입단 첫 해(2009) 첫 등판에서 어깨가 또 아팠다. 그날 1이닝 1안타 1볼넷 1탈삼진 1실점한 뒤 2군으로 떨어졌다. 언제 콜업될지 모르는 생활은 2년 6개월간 계속 됐다. 2010년에는 자신을 믿고 결혼한 아내(일본인)에게 미안해 중학교 이후 단 한 번도 생각하지 않았던 한국행을 고민했다. 마침 한국구단들의 러브콜도 쏟아졌다.

“지난해 2군에서 40이닝 동안 1실점하고 방어율이 0점대였는데 1군에서 절 안 부르는 거예요. 그냥 한국으로 돌아갈까 고민 많이 했어요. 그런데 아이러니한 게 그만둬야겠다고 마음먹은 순간 1군으로 콜업되더라고요.”

지난해 그는 1군에서 9경기에 등판해 9이닝 9안타(1홈런) 17탈삼진 5실점(4자책)을 기록했다. 안타수가 많았지만 방어율은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기회는 좀처럼 주어지지 않았다.

“코치들은 제가 분명히 나가면 잘 던질 수 있다는 것을 알아요. 그런데 안 내보내주는 거예요. 그런 편견을 이겨내는 게 운동하는 것보다 더 힘들었어요.”

그래도 가능성을 인정받았다. 선발수업을 위해 도미니카 윈터리그까지 가서 몸을 만드는 열정을 보이며 올해 당당히 1군 스프링캠프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전지훈련에서 보직이 다시 중간계투로 바뀌었지만 1군에서 시작할 수 있는 지금이 그에게는 행복이다.

“한국 분들은 절 잘 모르시죠? 지난해 오릭스 이승엽 선배님과 맞대결해서 조금 아시려나?(웃음). 주위에선 한국에서 기회가 더 많을 텐데 왜 고집을 부리시냐고 하세요. 그런데 제가 이루고 싶은 꿈이 있어요. FA를 통하지 않고도 일본무대에서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자! 아직 멀었지만 프로 4년 만에 1군 캠프에 합류했으니까 점점 나아지고 있는 건 맞잖아요. 한 번 끝까지 해볼 겁니다. 지켜봐주세요.”

미야자키(일본)|홍재현 기자 hong927@donga.com 트위터 @hong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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