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도가 내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나는 ‘왕’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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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1월 3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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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간MVP 3회 수상 왕기춘

왕기춘은 요즘 태릉선수촌에서 산다. 오전에는 체력 훈련, 오후에는 실전훈련에 나선다. 27일 태릉선수촌 필승관에서 만난 그는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서 은메달에 머문 이후 매년 8월이면 그때의 아쉬움이 되살아났다. 그때의 실패를 교훈 삼아 이번 런던 올림픽에서는 꼭 좋은 결과를 얻고 싶다”고 말했다. 원대연 기자 yeon72@donga.com
왕기춘은 요즘 태릉선수촌에서 산다. 오전에는 체력 훈련, 오후에는 실전훈련에 나선다. 27일 태릉선수촌 필승관에서 만난 그는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서 은메달에 머문 이후 매년 8월이면 그때의 아쉬움이 되살아났다. 그때의 실패를 교훈 삼아 이번 런던 올림픽에서는 꼭 좋은 결과를 얻고 싶다”고 말했다. 원대연 기자 yeon72@donga.com
“제가 전에는 좀 까칠했나요? 그저 말을 좀 아낀 것뿐인데, 하하.”

한국 유도의 간판스타 왕기춘(24·포항시청)이 달라졌다. 내성적인 성격 탓에 취재진과의 인터뷰도 꺼리던 그였다. 본인은 아니라고 하지만 그를 항상 지켜봐온 대표팀 정훈 감독은 “성격이 훨씬 밝고 명랑해졌다”고 말했다.

왕기춘은 2007년 세계선수권대회에서 한국 유도 사상 최연소 우승(19세)을 달성했다. 이르긴 했지만 놀라운 일은 아니었다. 서울체고에 다닐 때부터 ‘제2의 이원희’(32·한국마사회)로 불리며 두각을 나타냈기에. 이원희는 왕기춘과 같은 남자 73kg급에서 2004 아테네 올림픽 금메달을 땄다. 이원희는 왕기춘이 등장하기 전 이 체급에서 역대 최다인 48연승을 기록했다. 이 기록은 왕기춘이 지난해 초 53연승을 기록하면서 깨졌다. 왕기춘은 자신의 우상이었던 이원희를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꺾고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 출전했지만 결승에서 한판으로 졌다. 8강에서 갈비뼈를 다친 탓이었다.

“올림픽에 누구나 나갈 수 있는 건 아니잖아요. 꼭 우승하고 싶었는데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았어요.”

2009년 세계선수권 2연패 등 승승장구하던 그는 지난해 세계선수권대회에서 8강 진출 실패라는 충격적인 결과를 얻었다. 상대가 그의 기술을 간파했다는 것이 주변의 분석이다. 올해 런던 올림픽을 앞둔 그는 새 기술을 연마 중이다.

“상실감이 컸어요. 고민도 많이 했죠. 그러다 생각을 바꿨어요. 승패를 떠나 경기를 즐기자고….”

한국 유도의 간판 왕기춘(오른쪽)이 채널A의 예능 프로그램 ‘불멸의 국가대표’에서 씨름 천하장사 출신 이만기 인제대 교수와 시범경기를 치르고 있다. 결과는 왕기춘의 한판승. 왕기춘은 올해 런던 올림픽에서 2008년 베이징 대회 은메달의 한을 풀겠다는 각오다. 채널A 제공
한국 유도의 간판 왕기춘(오른쪽)이 채널A의 예능 프로그램 ‘불멸의 국가대표’에서 씨름 천하장사 출신 이만기 인제대 교수와 시범경기를 치르고 있다. 결과는 왕기춘의 한판승. 왕기춘은 올해 런던 올림픽에서 2008년 베이징 대회 은메달의 한을 풀겠다는 각오다. 채널A 제공
왕기춘은 지난해 12월 채널A의 야심작 ‘불멸의 국가대표’에 첫 번째 출연자로 낙점됐다. 그는 레슬링 심권호, 야구 양준혁, 씨름 이만기, 빙상 김동성 등 각 종목의 전설들을 한판으로 제압하며 ‘유도 기술의 진수를 보여줬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는 유도 실력뿐 아니라 “(내가 너무 빨리 이겨서) 방송할 분량이 안 나올 것 같으니 재도전을 받아 주겠다” 등의 재치 있는 즉흥대사와 최신 댄스까지 선보이는 등 숨겨 놨던 끼를 발산했다. ‘신세대 유도 황제’다운 모습이었다.

왕기춘은 최근 대한유도회가 선정한 2011년 최우수선수로 뽑혔다. 2007, 2009년에 이은 세 번째 수상이다. 2003년 처음 제정된 뒤 이 상을 두 번 이상 탄 선수는 왕기춘이 유일하다.

5년 전만 해도 왕기춘은 부모, 누나 둘과 함께 18평짜리 다세대주택에 살았다. 그는 “집이 너무 좁아 들어가기 싫을 정도였다”고 회고했다. 그러다 2007년 세계선수권대회 우승 포상금 1500만 원을 보태 30평짜리 월세로 옮겼고 지난해 포항시청에 입단하며 유도 사상 최고 계약금(3억 원)을 받은 뒤 38평짜리 전세(오피스텔)를 마련했다.

“부모님께서 제 월급은 10원도 안 건드리세요. 얼마나 힘들게 운동해서 번 돈인지 아신다면서요. 유도를 한 덕분에 제 인생이 풀렸어요. 이제 그런 유도를 위해 제가 도움이 되고 싶어요. 한국 유도사에 한 획을 그은 인물로 남고 싶습니다. 런던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면 조금 더 목표에 다가설 수 있겠죠?”

이승건 기자 w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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