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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학 전 용인시청 핸드볼 감독이 2일 경기 수원시 영통구 망포동 자택에서 가진 인터뷰 때 그동안 지도자로 받은 트로피를 앞에 두고
웃고 있다. 그는 “핸드볼을 계속할 수 있게 돼 행복하다. 트로피를 더 늘려 도와준 분들에게 보답하겠다”고 말했다. 수원=이종석
기자 wing@donga.com
“이름 탓인가 했습니다. 오죽 답답했으면 이름을 바꿔보려고 점쟁이까지 찾아갔겠어요.”
김운학 전 용인시청 핸드볼팀 감독(49). 그는 이름에 구름 운(雲), 배울 학(學)자를 쓴다. 지난해 6월 용인시가 재정난을 이유로 팀 해체를 선언하자 그는 또 이름 때문인가 싶더란다. 한곳에 정착하지 못하고 구름처럼 떠도는 팔자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그는 25세 때인 1988년 인화여중 코치로 지도자 생활을 시작한 이래 팀을 8번이나 옮겨 다녔다. 안정적인 중학교 체육교사 자리를 포기하고 코치로 입단한 동성제약은 얼마 못 가 외환위기로 팀이 해체되는 바람에 졸지에 백수가 되기도 했다.
대한핸드볼협회 등의 지원 덕택에 용인시청팀 해체가 지난해 12월 말까지로 6개월간 유예되긴 했지만 ‘시한부 팀’이기는 마찬가지였다. 김 감독은 자신이 2007년 핸드볼큰잔치 우승으로 이끈 팀의 해체를 막기 위해 백방으로 뛰어다녔다. 그는 용인에서 나고 자란 토박이다. 팀 해체를 막는 데 필요한 국비나 도비를 타내려고 연줄이 닿을 만한 사람이면 밤낮없이 찾아다녔다. “저는 그렇다 쳐도 할 줄 아는 게 핸드볼뿐인 선수들을 생각하면 잠이 안 왔습니다. 용인시장님이 초등학교 선배예요. 살려달라고 통사정했죠.” 하지만 허사였다. “사정은 딱하지만 해체가 결정된 다른 종목과의 형평성 때문에 어쩔 수 없다”는 얘기만 전해 들었다.
기업들도 직접 찾아다녔다. 김 감독은 “세상이 참 냉정하더라”고 했다. 명함을 두고 가면 연락하겠다던 회사는 감감무소식이었다. 스포츠팀을 운영하고 있는 회사는 그래도 관심이 있을 테니 얘기를 좀 들어주겠지 싶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그 기업이 운영 중인 다른 종목 팀이 핸드볼팀 인수를 반대했다. 자기 팀에 배정되는 지원이 줄어들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초등학교 4학년 때 핸드볼을 시작한 그는 “평생을 바친 핸드볼이 이것밖에 안 되나 하는 생각에 가슴이 먹먹하더라”고 했다. 소화가 안 되고 어지럽고 귀까지 윙윙거리는 신경성 스트레스도 겪었다. 그래도 포기할 수는 없었다.
“청와대 읍소요? 마지막이라는 심정으로 한 거죠.” 김 감독은 지난해 12월 청와대 홈페이지 게시판에 “용인시청 핸드볼팀을 살려 주세요”라는 장문의 글을 올렸다. “이게 혹시 잘못돼 높은 기관에 찍히는 거 아닌가 하고 걱정도 했어요. 하지만 팀이 없어질 판인데 무슨 짓을 못하겠나 싶었죠.” 그는 컴맹이다. 한글 문서 작업도 할 줄 모른다. 펜으로 꾹꾹 눌러 쓴 글을 다른 사람한테 부탁해 인터넷에 올렸다.
대통령에게까지 사정하고 나섰던 게 영향을 미쳤는지 대한핸드볼협회장을 맡고 있는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어떤 경우라도 선수들이 운동을 못하는 일은 없게 하라”며 구원자로 나섰다. SK는 용인시청팀을 해체한 뒤 재창단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고 그룹 계열사 중 어디서 팀을 창단할지 논의하고 있다.
“청와대 읍소도 효과가 없으면 머리띠 두르고 용인 시내로 뛰쳐나가 시민들한테 서명이라도 받으려고 했어요.”
선수들이 그에게 붙여준 별명은 ‘독사’다. 훈련을 혹독하게 시키고 한 번 마음먹은 건 무슨 일이 있어도 끝을 봐야 직성이 풀리는 스타일이다.
김 감독은 “이렇게까지 도움을 받았는데 제대로 못하면 나는 나쁜 놈”이라고 했다. “저나 선수들이나 지난 연말에 큰 선물을 받은 겁니다. 이제는 잘해야 되는 일만 남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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