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뭐래도 난 여자 ‘28년 묵은기록 깰 것’

  • 스포츠동아
  • 입력 2011년 8월 23일 07시 00분


양성자 성별 논란 딛고 세계기록 도전
女육상 800m 세·메·냐

1980년 미국 클리블랜드의 한 쇼핑센터에서 총격사건이 발생했다. 피해자
는 1932년 로스앤젤레스올림픽 여자육상 100m 금메달리스트 스탈리슬라
바 발라시비치(폴란드)였다. 그녀의 사망 후 부검과정에서 충격적인 사실
이 밝혀져, 세계는 한 번 더 놀랐다. 발라시비치가 양성자로 드러난 것이
다. 양성자는 몸에 여성 염색체인 XX와 남성 염색체인 XY를 모두 갖고 있
거나, 염색체 변형으로

○혜성과 같은 등장, 뒤이은 성별 논란

2009베를린세계육상선수권 여자 800m. 세메냐는 첫 바퀴를 돌 무렵부터 선두로 치고 나와 600m부터는 거의 독주를 펼친 끝에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2007오사카세계선수권 우승자인 자네스 젭코스케이(케냐)는 자신의 시즌 최고 기록(1분57초90)을 세웠지만, 세메냐(1분55초45) 보다는 무려 2초 이상 뒤졌다.

하지만 우승의 기쁨도 잠시 뿐. 뒤이어 성별논란이 일었다. 워낙 압도적인 레이스를 펼쳤고, 탄탄한 근육질의 몸매와 짧은 헤어스타일 등이 꼭 남자선수를 연상시킨다는 것이었다. 특히 우승 소감을 이야기 할 때의 중저음 목소리는 “세메냐는 양성자”라고 주장하는 이들에게 힘을 실었다.

국제육상경기연맹(IAAF)은 즉각 의료 전문 조사단을 동원해 세메냐의 성별 판독에 들어갔고, 2010년 7월 “여성으로 인정한다”고 공식발표를 했다. 하지만 정확한 진단 결과는 사생활 보호 차원에서 공개되지 않았다. 성 정체성 규명에 소요된 10개월의 시간 동안 세메냐는 대회 출전이 금지되는 수난을 겪었다.

○양성애자는 제3의 성?…선택이 아닌 태생적 운명

양성자는 본인의 선택이 아니라 태생적인 것이다. 성 이상이 아니라 제3의 성으로 봐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이들이 스포츠의 세계에 발을 딛는 순간 논란은 다른 질로 번진다. 대부분의 스포츠는 남녀 신체적 능력의 한계치 때문에 성별을 구분해 경쟁을 하기 때문이다.

2006도하아시안게임 여자 800m은메달리스트 산티 순다라얀(인도)은 염색체 이상으로 메달을 박탈당했고, 충격으로 자살시도까지 한 적도 있다. 그래서 수술을 통해 완전한 여성으로 다시 태어나는 양성자 선수도 있었다. 육상의 경우는 아니지만 양성자였던 유도선수 에디낸시 실바(브라질)는 고환을 제거한 뒤 1996, 2000, 2004, 2008년 올림픽과 세계선수권에 여자선수로 출전했다.

일반적으로 성별 검사에서는 허용치 이상의 남성 염색체를 가진 선수가 약 500명당 1명 정도 나오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세메냐도 어린시절 ‘사내를 닮은 여자아이’라는 말을 들었고, 11세 때는 남성들이 변성기를 겪는 것처럼 목소리가 굵어지기도 했다. IAAF가 공식적으로 세메냐를 여성으로 인정했지만, 여전히 많은 이들은 ‘세메냐가 평균의 여성보다는 많은 남성 염색체를 가졌을 것’이라고 추측하고 있다. 세메냐는 이에 대해 “신이 나를 이렇게 만들었고 나는 그것을 수용했을 뿐”이라며 대수롭지 않다는 반응이다.

2009년 베를린선수권 혜성같이 등장해 금메달
압도적 레이스·근육질 몸매에 양성자 논란일어
IAAF 공식 여자 인정에도 의심의 시선 계속되자
“신이 나를 이렇게 만들었고 받아들였을 뿐” 해명
내달 4일 28년 유지된 세계기록 갈아치울지 관심


○세메냐, 28년 간 깨지지 않은 세계기록 도전

세메냐가 세계 육상에 등장한 것은 17세이던 2009년 아프리카 주니어 챔피언십대회에서였다. 800·1500m를 동시에 석권했고, 800m 개인기록을 9개월 만에 7초 가량 앞당겼다. 그리고 몇 개월이 지나지 않아 2009세계선수권도 제패했다. 이후 약10개월간의 공백기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거침없는 레이스를 이어가고 있다. 2010년 7월 핀란드에서 열린 유럽 지역 2개 대회에서 2연패를 거두며 화려하게 부활했고, 3월 남아공 육상대회 400m에서도 54초03으로 금메달을 차지했다.

2010년 영국의 정치전문잡지 뉴스테이츠맨은 ‘올해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50인’에 세메냐를 선정하기도 했다. 성별을 의심받을 만큼 뛰어난 레이스를 펼쳤기 때문이었다. 세메냐는 “대구에서 챔피언 자리를 지켜내겠다. 2연패를 달성하고자 많이 노력했고 충분히 그럴 만하다고 느끼고 있다”며 강한 자신감을 표현하고 있다.

세계육상에서 가장 오랫동안 세계기록이 깨지지 않고 있는 종목은 바로 세메냐가 출전하는 여자 800m다. 자밀라 크라토치빌로바(구 체코슬로바키아)가 1983헬싱키세계육상선수권에서 세운 1분53초28은 무려 28년째 난공불락의 요새로 남아있다. 세메냐는 여자 800m세계기록에 도전할 거의 유일한 후보로 꼽힌다.

2009베를린세계선수권 당시 기록과는 약 2초17차다. 그녀는 2일 남아공의 스포츠채널 슈퍼스포츠와의 인터뷰를 통해 “나는 역경 속에서 강하게 자라났다. 나는 남들의 시선으로 정의되지 않는다. 두 종목(800·1500m)에서 세계의 기준을 끌어 올리겠다”며 세계기록 도전의사를 명확히 했다. 여자 800m결승은 대회 마지막 날인 9월4일 오후 8시15분에 열린다.

전영희 기자 (트위터@setupman11) setupma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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