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리포트] “내 아들 이충성은 자랑스러운 국가대표”

  • 스포츠동아
  • 입력 2011년 8월 11일 07시 00분


삿포로 돔 경기장 찾은 부친 이철태씨 만감 교차
“재일교포 시선 바꿔…한일 잇는 가교 역할 하길”

목소리는 계속 떨렸다. 두 손에 받아든 티켓을 꼭 쥔 채 어쩔 줄 몰라 했다.

재일교포 4세로 까마귀 엠블럼(일본대표팀 상징)을 가슴에 단 아들 이충성(26·산프레체 히로시마)이 한국전에 출전하는 걸 관전키 위해 10일 일본 홋카이도 삿포로 돔을 찾은 아버지 이철태(53) 씨는 만감이 교차하는 표정이었다. 곁에 있던 어머니 정유미(53) 씨도 손을 연신 가슴에 대며 두근거리는 마음을 진정시키려 노력했다.

어린 아들의 손을 붙잡고 종종 찾았던 한일전. 당시만 해도 “한국, 이겨라!”를 외치며 태극마크를 꿈에 그렸던 아들은 이제 일본대표가 돼 있다.

이 씨 부부는 한국 취재진을 만나 “재일교포들에 대한 시선을 바꿔놓은 자랑스러운 아들이 아니냐”며 입을 열었다.

솔직히 이 씨는 이충성이 일본대표가 된다는 걸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단다.

그러나 이젠 현실이 됐다. 한 때 태극전사가 되길 희망했던 아들은 한국에서 외면 받고, 어엿한 일본 대표로 새로운 인생을 개척했다. “한일 관계도 가까워졌다. 충성이가 이젠 양 국을 잇는 가교 역할을 해주길 바란다.”

그렇다고 일본대표의 길도 쉽진 않았다. 일본인들은 재일 교포가 일본 대표팀에 승선한단 사실을 받아들이기 어려워했다. 비난도 대단했다고 털어놨다.

하지만 싸늘한 시선을 바꿔놓은 건 한 순간이었다. 1월 카타르 아시안컵 결승전에서 이충성은 결승골을 터뜨리며 제2의 조국에 우승컵을 안겼다. 이 씨는 “충성이가 아시안컵에서 득점하며 비판하던 일본인들의 입을 다물게 했다”고 말했다.

이날 이충성은 예의 ‘조커’ 신분이 아닌, 당당히 스타팅 라인업에 이름을 올렸다.

삿포로 돔을 가득 채운 3만9000여 푸른 물결의 울트라 닛폰은 “다다나리 리(이충성의 일본명)”를 외치는 장내 아나운서의 외침에 힘찬 함성으로 갈채를 보냈다.

삿포로(일본) | 남장현 기자 (트위터 @yoshike3) yoshike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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