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아일랜드産 ‘유럽의 탱크’ 잉글랜드 비바람을 정복하다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7월 18일 03시 00분


미켈슨 제치고 3타차 우승… 메이저대회 무관 한 풀어앤서니 김 5위-양용은 16위

대런 클라크(43·북아일랜드)는 인간미 넘치는 선수다. 술 좋아하고 사람 좋아한다. 코스 안에서건 밖에서건 담배를 피우는 걸로도 유명하다. 18일 새벽(한국 시간) 잉글랜드 샌드위치의 로열 세인트 조지스 골프장(파70·7211야드)에서 열린 제140회 브리티시오픈 최종 라운드 도중에도 종종 담배에 불을 붙였다.

긴장될 만도 했다. 산전수전 다 겪은 베테랑이지만 그는 한 번도 메이저대회 타이틀을 차지한 적이 없다. 최근 10년간의 메이저 대회에서 리더보드 제일 위에 이름을 올린 적도 없다.

한물갔다는 평가를 듣던 클라크가 길었던 메이저 대회의 한을 풀었다. 그것도 4대 메이저 대회(마스터스, US오픈, 브리티시오픈, PGA챔피언십) 가운데 가장 오랜 역사를 지닌 브리티시오픈 무대였다. 1타 차 단독 선두로 4라운드에 임한 클라크는 최종 4라운드에서 이븐파를 쳐 합계 5언더파 275타로 클라레 저그(브리티시 오픈 우승자에게 주는 은빛 주전자)에 입을 맞췄다.

○ 하늘이 도운 우승

클라크는 그동안 주 무대인 유럽투어에서 13회나 우승했고, 미국프로골프(PGA) 투어에서 2회 우승컵을 안았다. 그는 2000년 안데르센 컨설팅 매치플레이 챔피언십 결승에서 ‘골프 황제’ 타이거 우즈(미국)를 꺾은 적도 있다. 하지만 메이저대회 우승과는 인연이 없었다. 1997년 브리티시오픈에서 공동 2위에 오른 게 최고 성적이었다.

3라운드에선 하늘이 도왔다. 오전에 티오프를 한 선수들은 많은 비를 동반한 바람 속에서 경기를 치르느라 제 기량을 발휘하기 힘들었다. 하지만 그가 경기를 시작한 오후 들어서 날씨가 좋아지면서 좋은 환경에서 경기를 할 수 있었다. 그 덕분에 그는 3라운드에서 1언더파 69타를 치면서 단독 선두에 오를 수 있었다.

3라운드가 운이었다면 4라운드는 실력이었다. 1번홀부터 보기 위기를 맞았으나 5m 넘는 퍼트를 성공시켰다. 먼저 플레이를 한 필 미켈슨(미국)이 7번홀에서 이글을 해 잠시 공동 선두를 허용하기도 했지만 클라크 역시 7번홀 이글로 응수했다. 이후엔 꾸준히 스코어를 지켜내며 우승을 확정지었다.

○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클라크는 인간적인 면모 덕분에 유럽 팬들 사이에서 인기가 높다. 한때 골프계의 주당으로 유명했고, 시가 마니아로 알려져 있다. 해마다 시가를 사는 데 쓰는 돈만 2만5000파운드(약 4262만 원) 정도 된다.

지극한 아내 사랑으로도 화제가 됐다. 그는 나이트클럽에서 만난 헤더와 결혼했는데 아내가 유방암에 걸리자 2005년과 2006년에 종종 대회에 참가하지 않고 아내 곁을 지켰다. 헤더는 결국 2006년 6월 암으로 사망했다.

그러자 그동안 클라크와 깊은 관계를 유지했던 친구들이 나섰다. 폴 맥긴리(아일랜드)는 헤더의 장례식 참석을 위해 PGA 챔피언십 출전을 포기했다. 또 다른 친구인 페드레이그 해링턴(아일랜드)도 “PGA 챔피언십에서 획득한 상금 전액을 클라크의 뜻대로 쓰겠다”고 선언했다. 그 주 유럽투어에 참가한 선수들은 모두 검은 리본을 달고 경기를 했다. 클라크는 지난해 말 전 미스 북아일랜드 출신 앨리슨 캠벨과 약혼했다.

한편 클라크와 동반 라운드를 한 더스틴 존슨(미국)은 2언더파 2위로 또다시 메이저 대회의 벽을 넘지 못했다. 지난해 US오픈과 PGA 챔피언십 마지막 날 아쉽게 우승을 놓친 존슨은 필 미켈슨(미국)과 함께 공동 2위를 차지했다.

한국(계) 선수 가운데서는 앤서니 김(미국)이 이븐파로 공동 5위에 올랐고, 5오버파를 친 양용은은 공동 16위에 자리했다. 노승열과 최경주는 각각 공동 30위(9오버파)와 공동 44위(11오버파)였다.

이헌재 기자 uni@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