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순일의 ‘내사랑 스포츠’] 길거리에서 2000명과 싸웠던 최강의 파이터는?

동아일보 입력 2010-09-02 11:14수정 2010-09-03 1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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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지스 경기 장면.로이터
'바람의 파이터' 최배달(본명 최영의). 실전 가라테의 태두인 그는 전 세계를 돌며 싸움의 강자와 맞대결을 벌인 전설의 무도인이다.

최배달과 같은 시대에 그에 못지않은 최강의 파이터가 또 한명 있다. 주지스(유술)의 창시자 마에다 미츠요가 바로 그다.

1880년 태어난 마에다는 17살 때 유도의 본관인 강도관에 들어갔다. 체격은 그리 크기 않았으나 강한 힘을 타고 났다. 1904년 미국으로 건너간 그는 웨스트포인트에서 시범을 보였고, 프린스턴 대학에서는 유도에 관해 강의를 했다.

하지만 파이터로서의 천성을 타고 난 그는 좀 더 강한 자와 싸워보겠다는 평소의 결심을 지키기 위해 스트리트 파이터로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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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에 '나를 이기면 1000달러(You can get 1000$ by defeating me!)'라는 간판을 걸고 다니며 2000회에 달하는 길거리 싸움을 벌여 모두 승리했다. 무기를 든 상대는 물론이고, 갱스터를 상대하기도 했다.

마에다는 싸움의 여러 가지 기술을 연구해 요즘 이종 격투기에서 볼 수 있는 암바나 마운트펀치 같은 새로운 기술까지 개발했다.

이렇게 강도관 규정을 어기고 길거리에서 격투를 벌이는 바람에 마에다는 유도계에서 파문을 당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무술을 유도 대신 유술로 불렀다.

세계를 돌던 마에다는 스페인을 거쳐 1915년 브라질에 정착한다. 여기서 그는 브라질의 유력 인사인 가스티우 그레이시와 사귀게 되고, 가스티우는 아들 카를로스 그레이시에게 마에다 도장에서 유술을 배우게 했다.
우슈 경기 장면

이렇게 해서 세계 최강의 격투기 가문인 '그레이시 패밀리'가 시작된 것. 유술의 일본어 발음인 쥬짓츠가 영어로 바뀌면서 주지스로 읽혔고, 마에다에 뿌리를 둔 그레이시 일족은 이후 최강의 무도 집안으로 전 세계에 이름을 떨쳤다. '브라질리안 주지스'가 일반 명사화된 것도 '그레이시 패밀리' 덕분.

중국 베이징에서는 '스포츠 어코드 컴뱃 게임'이 지난달 28일 개막해 4일까지 열전을 벌이고 있다. '무술 올림픽'이라고도 불리는 이번 대회에는 한국의 국기인 태권도를 비롯해 우슈, 복싱, 무에타이, 킥복싱, 가라테, 검도, 스모, 합기도, 레슬링, 삼보 등 13개 종목이 참가했다. 눈길을 끄는 것은 유도와 주지스가 나란히 참가를 했다는 것.

'스포츠어코드 컴뱃 게임'은 다른 종목 선수끼리 대결하는 게 아니라 각 분야 별로 고수들이 출전해 기량을 선보이는 무술계의 올림픽.

하지만 경기장 밖에서는 각국이 내세우는 무술을 세계에 알려 올림픽 정식 종목에 넣으려는 힘겨루기가 펼쳐진다. 13개 종목 중 올림픽 정식 종목은 태권도, 복싱, 유도, 레슬링 등 4개 뿐.

중국의 우슈와 일본의 가라테, 러시아의 삼보가 올림픽 정식 종목에 들어가기 위해 노력을 하고 있지만, '전설의 파이터' 마에다가 만든 주지스도 그 위력을 선보이며 대회 내내 관계자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권순일 기자 stt77@donga.com

▲동영상=사이판 격투계 대부, “韓파이터, 강하면서 겸손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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