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년 공한증’ 언젠간 깨지리라 했지만… 너무 심하게 깨졌다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2월 1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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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축구 허정무호, 중국에 충격의 완패
27경기 연속 무패 마감… 여자도 中에 무릎

허정무 감독은 10일 도쿄 아지노모토 경기장에서 열린 중국과 동아시아축구선수권 2차전을 앞두고 중국전 27전 무패(16승 11무) 기록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기록은 언젠가 깨지게 돼 있다. 기록에 연연해 발목을 잡히지는 않겠다”고.

마침내 그날이 왔다. 31년 이상 이어진 중국전 무패 기록은 깨졌다. 한국은 전반 5분 중국에 첫 골을 내주면서 넘어간 분위기를 끝내 되돌리지 못했다. 0-3의 완패였다.

한국은 이 패배로 대회 2연패가 어려워졌다. 일본과 개막전에서 0-0으로 비긴 중국(1승 1무)은 약체 홍콩과의 경기가 남았고 한국(1승 1패)은 14일 일본과 싸운다.

이날 선발 기용은 홍콩과 1차전 때와는 변화가 있었다. 일본에서 합류한 이근호(이와타)가 이동국(전북)과 투 톱으로 호흡을 맞췄고 공격형 미드필더 김두현(수원), 수비수 곽태휘(교토상가)가 오랜만에 선발로 출전했다.

하지만 새로운 선발진이 호흡을 맞추기도 전에 중국의 선제골이 터졌다. 전반 5분 취보의 크로스를 위하이가 헤딩골로 연결했다. 중국의 공세는 계속됐고 27분 추가 득점이 나왔다. 페널티 지역에서 곽태휘가 실축한 공을 중국이 가로채 가오린이 왼발 슛으로 골인시켰다.

중국이 마침내 ‘공한증(恐韓症·한국을 두려워하는 병)’을 극복할 가능성이 보이자 300여 명으로 이뤄진 중국 응원단은 “짜유(힘내라), 짜유”를 외치며 오성홍기를 흔들어댔다. 차가운 날씨 속에 경기 내내 날린 부슬비도 중국의 응원 열기를 막지 못했다.

한국은 0-2로 뒤진 채 맞은 후반에서 이근호 대신 이승렬(서울)이 나왔지만 15분 덩줘샹에게 세 번째 골을 내줬고 이후 수비 위주의 중국 골문을 끝내 열지 못했다.

공교롭게도 한국과 중국의 첫 대결이었던 1978년 12월 17일 방콕 아시아경기 당시 허 감독은 선수로 출전했다. 당시 한국은 차범근(수원 감독)의 결승골로 1-0 승리. 그로부터 12일 뒤 필리핀에서 열린 아시안컵 1차 예선에서 한국은 다시 중국을 만났는데 이때는 허 감독이 결승골을 터뜨려 1-0으로 이겼다. 장구한 기록의 서막을 연 허 감독이 결국 그 기록을 마감하는 경기에서 한국의 사령탑이었다는 점은 아이러니다.

기자회견장에서 내내 침울한 표정을 지은 허 감독은 “언젠가 올 일이지만 오늘 온 것이 섭섭하다”고 말했다.

한편 한국은 앞서 열린 여자부 경기에서도 중국에 져 1승 1패가 됐다. 이상엽 감독이 이끄는 여자 대표팀은 후반에 2골을 내준 뒤 지소연(한양여대)이 1골을 만회했으나 결국 1-2로 졌다.

도쿄=김성규 기자 kimsk@donga.com


선수기용 잘못됐다
▽허정무 한국 감독=우리는 졸전을 했고 중국은 상대적으로 잘했다. 우선 선수 기용이 잘못됐다. 이근호, 김두현, 곽태휘는 올 초 해외 전지훈련을 같이 못한 선수들인데 월드컵 본선을 대비해 출전시켰다. 결과적으로 선수들끼리 호흡이 잘 맞지 않았다. 경기 초반 쉽게 실점하면서 선수들의 마음만 급해져 오히려 경기가 더 안 풀렸다. 중국이 (마침내 한국을) 이긴 것은 축하할 일이다. 언젠가 올 일이었다. 하지만 이날 패배로 중국이 두려운 상대가 된 것은 아니다. 대회의 질도 개선해야 한다. A매치에 경기 당사국의 심판을 세운다는 것은 문제가 있다. 그동안 월드컵 본선 준비 과정에서 대표팀이 너무 쉽게 왔다. 오늘 당한 것이 자극이 될 것이다. 이 패배를 계기로 (월드컵을) 더욱 철저히 준비하겠다.

정신력-전술의 승리
▽가오훙보 중국 감독=오늘 이겨 매우 기쁘다. 오늘 승리로 그동안 대회에 맞춰 훈련해 온 대표팀의 대비 과정이 옳았음이 증명됐다. 오늘 승리의 원인은 두 가지다. 첫째는 우리 선수들의 정신력이 좋았다. 선제골을 넣은 이후에도 흥분하지 않았고 한국의 역습에도 침착하게 잘 대처했다. 둘째, 전술이 잘 먹혔다. 특히 주장 두웨이와 공격수 취보가 내가 원하는 전술을 잘 이해하고 따라줬다. 응원도 빼놓을 수 없다. 12번째 선수인 응원단이 오늘 승리에 큰 힘이 됐다. 오늘 한국을 이겼지만 중국 축구의 실력은 아직 한국과 일본보다 아래라고 생각한다. 자만하지 않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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