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스볼 피플] 김태균 “남자는 도전…日무대 실패? 두려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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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09년 11월 23일 07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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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을 정복하겠습니다.” 지바 롯데에 입단한 김태균이 방망이를 들고 미소를 머금고 있다. 우람한 체격과 자신만만한 표정. 일본프로야구 정복 의지가 읽힌다. 배트는 WBC 준우승을 일군 선수단 전원이 사인한 기념배트다. 박화용 기자 inphoto@donga.com
“일본을 정복하겠습니다.” 지바 롯데에 입단한 김태균이 방망이를 들고 미소를 머금고 있다. 우람한 체격과 자신만만한 표정. 일본프로야구 정복 의지가 읽힌다. 배트는 WBC 준우승을 일군 선수단 전원이 사인한 기념배트다. 박화용 기자 inphoto@donga.com
아버지 손에 이끌려 시작한 야구…매일 밤 500번 스윙해야 잠들수 있어 
3년전부터 준비해온 해외진출 감격…90억? 지금도 용돈 타서 쓰고 있어요 


나이키 운동화를 신어보는 게 꿈이었던 소년이 단숨에 90억원을 거머쥐는 청년재벌이 됐다. 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영문도 모르게 시작한 야구. 이제 그 야구는 자신의 분신이자 살아가는 이유가 됐다. 어릴 때부터 팔씨름 한번 져본 일이 없던 소년장사는 청소년대표, 국가대표를 거치며 대한민국의 4번타자로 우뚝 섰다. 그리고 오랜 꿈이었던 해외진출의 꿈을 이뤘다. 3년간 7억엔(90억원). 지바 롯데가 그를 영입하기 위해 버선발로 한국을 찾았다. 주위에서는 “한국에 남아 편안하게 야구를 하라”고 충고했지만 그는 실패를 각오하면서까지 ‘도전’을 선택했다. 지바 롯데 입단식을 치르고 귀국한 김태균(27)을 만났다.

○나의 야구 스승 아버지
그는 초등학교 2학년 때 야구에 입문했다. 선수들에게 야구를 시작한 이유를 물어보면 흔히 “유니폼이 너무 멋있어서”, “친구가 야구하는 게 부러워서”, “운동신경을 본 감독이 권유해서” 등등을 말한다. 그러나 그는 “나도 모르게 야구를 하게 됐다”며 웃었다.

천안 일봉초등학교 2학년 때, 수업 중에 갑자기 아버지 김종대(55) 씨가 학교를 찾아왔다. 그리고는 “같이 가자”며 손을 이끌었다. 영문도 모른 채 따라나섰다. 알고 보니 천안 남산초등학교로 전학을 가는 것이었다.

“사촌 형이 먼저 야구를 시작했어요. 명절 때 큰아버지께서 항상 야구 얘기를 하시니까 아빠가 부러웠나 봐요. 그래서 야구부가 있는 학교로 전학을 보내 야구를 시킨 거였죠. 그런데 너무 어려서 그런지 감독이 처음에는 야구를 시켜주지 않았어요. 유니폼을 입고 구경만 했죠.”

○초등학교 때부터 스윙 500번 해야 잠자리
야구를 시작하자 아버지는 엄격한 스승이자 최대 후원자가 됐다. 집 옥상에 T배팅을 할 수 있는 그물을 설치했다. 개인 연습장이었다. 아버지는 이미 학교훈련으로 충분히 지쳐있는 아들을 밤마다 불러냈다.

“매일 밤 옥상에 올라가 500번씩 스윙을 해야 했어요. 아빠는 숫자를 세면서 옆에서 지켜보고 계시고. 500번 스윙을 하지 않으면 잠을 재우지 않았죠. 집에서는 아빠가 언제나 훈련 파트너였어요. 초등학교 때는 너무 힘들어 몇 번씩이나 야구를 안 하겠다고 했어요. 그럴 때마다 아빠한테 혼났죠. 그런데 중학교 들어가면서 제가 야구에 미치게 되더라고요. 자기 전에 스윙훈련을 하는 것이 습관이 됐어요, 지금까지. 중·고등학교 때 대회가 끝나고 열흘간의 휴가가 주어지면 딱 하루만 쉬었어요. 그리고는 학교에 가서 아빠하고 훈련했어요. 제가 생각해도 철이 일찍 들었죠.”

그런 아버지도 2001년 프로에 입단한 뒤로는 야구에 관한 스트레스를 주지 않았다. 조언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아들이 부담스러워 할까봐 야구장 발걸음도 자제했다. 가끔씩 대전구장 외야 관중석에서 야구를 보고 몰래 갔다.

○3년전부터 준비해온 해외진출, 그리고 고비
그는 3년전부터 일본프로야구 진출을 목표로 삼았다. 프로에서 9년간 활약하면 완전 프리에이전트(FA)로 자유롭게 해외에 진출할 수 있지만 7년이 지나도 구단의 허락만 받으면 해외진출 자격은 얻기 때문이다. 그래서 남몰래 에이전트도 선임했지만 2006년과 2007년 성적이 뜻대로 나오지 않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고 털어놨다. 또한 올 초 경기 중 뇌진탕을 당한 뒤에도 마음이 흔들렸다.

“WBC부터 시즌 초반까지 컨디션이 너무 좋았어요. 속으로 ‘다 죽었어!’라고 외쳤죠. 내 생애 최고의 성적이 나올 것 같더라고요. 그런데 다치고 나니 흔들렸어요. 그냥 한국에 남아야겠다고. 올 시즌 포기까지 생각했죠. 야구를 할 수 있는 몸상태가 아니었어요. 머리가 띵한 것은 물론이고 누워 있다가 일어나는데 배에 쥐가 나기도 했으니까. 근육도 이상하게 돼 버린 것 같더라고요. 경기에 나섰지만 2개월 가량 공도 제대로 보이지 않았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한 달 정도 제대로 쉬고 출장했으면 오히려 회복 시간을 단축시킬 수도 있지 않았나 싶어요.

당시 팬들이나 주위 아는 분들이 많이 도와주셨어요. 좋은 약도 구해주시고. 그때 ‘만약 외국에 나가서 이렇게 다치면 누가 챙겨주나’ 싶어 한국에 남아야겠다고 잠시 딴 생각을 하기도 했죠. 그런데 너무나 오랜 꿈이었던 해외진출을 포기하지 못하겠더라고요. 그래서 ‘아니야, 남자가 도전해봐야지’ 하고 생각을 바꾸게 됐죠.”

○90억원? 아직도 용돈 타서 쓰고 있어요
그는 지바 롯데와 3년간 90억원이라는 초대형 계약을 맺었다. 이 정도면 ‘청년재벌’이라고 부를 만하다. 갑자기 만지게 된 거액. 그러나 그는 “별다른 느낌이 없다”고 했다.

“프로 입단 후에도 계속 부모님이 통장관리를 해왔어요. 항상 용돈을 받아서 썼죠. 지금도 그래요. 90억원? 난 실감이 나지 않아요. ‘아∼, 난 부자됐어’, ‘이 돈을 어디다 쓸까’ 그런 생각도 해본 적이 없어요. 부모님 허락 없이 내 마음대로 뭔가를 살 수 있는 것도 아니니까. 아빠는 예전에 주류도매업을 하시면서 고생을 많이 하셨죠. 지금은 부동산 중개업을 하고 계시지만…. 아빠는 엄해요. 어릴 때부터 엄마가 티셔츠 하나를 사더라도 아빠 허락을 받고 사주셨으니까. 우리 또래들이 다 그렇지만 나이키 운동화 하나 신는 게 꿈이었는데, 그렇게 졸라도 꿈쩍 하지 않던 아빠예요. 나이에 맞게 하나씩, 하나씩 풀어주시고 제 분수에 맞게 뭔가를 사 주셨어요. 일본에 가서도 저는 제 월급통장 한번 못 볼 걸요?”

○남자는 도전,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FA 신분이던 그가 친정팀인 한화에 남더라도 거액을 받을 수는 있었다. 한화도 역대 국내 최고대우를 보장했다. 2004년 말 FA 심정수가 삼성과 계약할 때 받은 4년간 60억원을 넘어 70억원 이상을 베팅했다.

“주위에서는 그러죠. 나이도 어리니까 4년 후 FA가 되면 또 거액을 받을 수도 있다, 한국에 남으면 편하게 야구할 수 있는데 왜 굳이 일본까지 가서 사서 고생하느냐고. 저도 그래서 FA 신청을 해놓고 하루에도 수만 번 생각이 왔다갔다 했어요. 그런데 여기에 안주하고 정체돼 있는 게 싫었어요. 편하게 한국에 남아서 야구하면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그냥 그런 성적으로 야구하다 끝날 것 같았어요.”

그동안 일본무대에 진출한 타자들이 모두 실패를 경험했다. 이종범, 이승엽, 이병규 등 한국에서 특급 활약을 펼치던 선배타자들도 어려움을 겪은 무대가 바로 일본이다.

“저도 잘 알죠. 제가 우상으로 여기는 (이)승엽이 형까지 고생 많이 하고 있으니까. 사실 실패할 수 있다는 생각도 하고 있죠. 그러나 실패해도 한 단계 성장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프로 첫해 신인왕에 오른 다음에 자만한 적이 있어요. ‘프로도 별 거 아니네, 역시 난 야구를 잘해’ 생각하다 혹독한 2년차 징크스를 겪었잖아요. 그 실패를 통해서 저도 많은 것을 깨닫고 성장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이번 일본 진출로 또 성장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고 싶었어요. 또 다른 환경에서, 수준 있는 무대에서 내가 어느 정도인지 테스트를 해보고 싶어요. 안 되면 ‘내가 거기까지구나’라고 깨달으면 되고….”

그는 인터뷰 말미에 또 “다 죽었어!”라며 호탕하게 웃었다. 자신감 없이 일본무대에 도전장을 던진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는 스트레스에 짓눌리는 스타일은 아니다. 특유의 털털하고 능글능글한 성격. 주위에서는 이런 점을 들어 오히려 성공 가능성이 높다고 평가하고 있다.

이재국 기자 keyston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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