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스볼 피플] 히어로즈 에이스 ‘우뚝’ 이현승

  • 입력 2009년 7월 3일 07시 59분


타도 장원삼…“태극마크 나도야 단다”

2003년, 인하대 2학년 투수 이현승은 기숙사 책상에 ‘타도 장원삼’을 써 붙였다. 고교시절까지 이름도, 얼굴도 몰랐던 장원삼. 중앙대와 경기에서 연속해서 장타를 허용하며 무너진 날 인하대 주성로 감독은 이현승을 불렀다. “너랑 똑 같은 왼손, 경성대 투수 장원삼을 봐라. 타자들 타이밍을 완전히 뺏으면서 던지잖아, 넌 왜 그렇게 못하니?” 가슴이 아팠다. 한참 야구의 재미에 푹 빠져있던 그 때, 꼭 장원삼보다 야구 잘하는 선수가 되고 싶었다.

2006년, 현대 신인투수 이현승은 2군행을 통보받았다. 수원에서 원당구장으로 직접 차를 몰고 가다 눈물을 펑펑 흘렸다. 그 해 현대에서 함께 데뷔한 장원삼은 12승 10패, 방어율 2.85를 기록하며 돌풍을 일으킨다.

2008년,장원삼은 태극마크를 달고 베이징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목에 건다. 이현승은 TV로 중계방송을 보며 목이 터져라 응원했고 기뻐했다. 그러나 장원삼의 환한 미소가 화면에 잡히는 순간 스스로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르는 여러 가지 감정이 교차했다.

2009년, 히어로즈의 미국 플로리다 스프링캠프. 제 2회 WBC 국가대표로 선발된 장원삼이 하와이로 떠나기 위해 짐을 쌌다. “원삼아 잘 다녀와, 잘 던지고!” 친구를 배웅하고 돌아온 이현승은 자신도 너무나 하와이에 가고 싶어 밤잠을 설쳤다.

2009년 6월. 장원삼과 이현승은 서로 등판하지 않는 날이면 캐치볼을 함께하며 서로 연습을 돕는다. 팀 내에서 가장 친한 친구. 그리고 장원삼이 시즌 초 잠시 부진했던 사이 이현승은 9승을 거두며 친구 대신 에이스 역할을 해내고 있다.

히어로즈 이현승(26). 2006년 데뷔 후 지난해까지 3시즌 동안 9승을 거둔 평범한 성적. 그러나 올 시즌 9승을 거두며 다승, 방어율, 최다이닝, 피안타율까지 탈삼진을 제외한 선발투수 기록 대부분에서 상위권에 올라있다. ‘홈런공장’ 목동구장이 홈인 점을 감안하면 빼어난 실력이다.

장원삼과 김수경, 마일영까지 시즌 전 1-3 선발로 꼽히던 세 동료 컨디션이 그렇게 좋지 않은 상황에서 이현승의 활약은 단연 돋보일 수밖에 없다.

최근 ‘휴식차’ 2군에 가 있는 그에 대해 김시진 감독은 “보험을 들어놨다”고 했다. 잠시 전력에서 이탈했지만 그가 1군에 복귀하는 날, 히어로즈가 재도약의 주춧돌을 다시 품게 될 것이란 자신감이 깔려있다.

이현승에게 ‘에이스’라는 말을 꺼내자 “아이쿠, 말도 안 돼요”라며 웃음과 함께 손사래를 친다. “우리 팀 분위기가 워낙 좋고, 타자들이 정말 잘 쳐요. 초반에 잠시 (김)수경이형이랑 원삼이가 컨디션을 찾지 못했을 때 제가 잠시 동료들 도움으로 승을 많이 거뒀을 뿐입니다.” 스스로 겸손해 했지만 이현승은 이번 시즌 확실히 달라져 있었다.

○친구 장원삼이 있었기에

이현승은 시즌 전반 좋은 성적을 올리고 있는 것에 대해 “원삼이에게 항상 고맙다”고 했다. 시간을 7년 전으로 되돌리면 이현승은 2차 3번(전체 26번), 장원삼은 2차 11번(전체 89번)으로 현대에 지명을 받았다. 모두 프로입단을 미루고 대학에 진학했지만 이현승의 지명순서가 훨씬 앞섰었다.

그러나 프로에서 탄탄대로를 달린 장원삼과 달리 이현승은 3년 동안 수없이 많은 실패와 좌절을 맛봤다. “대학 때는 잘 몰랐기 때문에 뛰어넘기 위해 ‘타도 장원삼’이라고 써 붙였었죠(웃음). 대학 때 원삼이랑 대학대표팀에 함께 뽑히고 룸메이트가 되면서 친해졌어요. 질투나 질시 그런 건 없었어요. 원삼이가 정말 잘 하는데 그 만큼 못 따라가는 제 스스로에게 화가 났죠. 원삼이 보면서 열심히 훈련했어요. 힘든 줄도 몰랐죠. 고마워요, 항상.”

○룸메이트였던 코치, 코치였던 감독

히어로즈 김시진 감독은 “이현승이 자신감 있게 타자와 승부하면서 좋은 성적으로 이어지고 있다”고 했다. 자신감의 바탕에는 이번 시즌부터 싱커와 컷패스트볼을 던지면서 구종이 다양해진 점이 꼽힌다. 그리고 힘으로만 승부하던 지난해와 달리 타자들의 타이밍을 뺏는 수 싸움을 벌이며 매 경기 긴 이닝을 책임지고 에이스급 투수로 거듭났다.

“정민태 코치님은 신인 때 룸메이트로 모셨어요. 그 때 투수코치님은 지금 감독님이잖아요. 긴 시간 가르쳐주신 분들이라 곁에 계신 점만으로도 의지가 돼요. 저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아는 분들이고, 저 역시 잘 여쭤볼 수 있는 점이 좋아요. 캠프에서 정민태 코치님이 ‘너무 힘으로만 던지지 말고 타이밍을 뺏어라’는 지적을 해주셨는데, 뭔가 마음속에서 깨달음이 있었어요. ‘그래 1군 선수들은 모두 아마 때 잘나가는 스타들이었잖아, 던지면 맞을 수밖에 없다. 타이밍을 뺏자’고 마음을 먹었죠.”

이현승은 140km 후반 대 빠른 공에 체인지업도 느린 공, 더 느린 공, 슬라이더도 스피드를 다 달리해서 던졌다. 그리고 자신의 공을 맞히지만 범타로 물러나는 타자들을 보며 헛스윙 삼진아웃 이상 희열을 느꼈다. “제가 불펜에 있을 때 별명이 ‘불사마’였어요. 얼마나 타자들에게 많이 맞아댔으면 별명이 그랬겠어요. 그래도 많이 깨지고 맞고, 2군도 내려가고 그랬던 게 지금은 다 재산 같아요.”

○태극마크 달고 환하게 웃고 싶은 꿈

시즌 몇 승? 다승왕 욕심? 올 시즌 목표를 묻는 지극히 평범한 질문을 던졌다. 이현승은 목표대신 그동안 소중히 간직하고 있던 꿈을 진지하게 털어놨다. “항상 상상을 해요, 포스트 시즌 경기나 한국시리즈 그런 중요한 경기 마운드에 올라서 끝까지 공을 던져 이기고 내려오는 거죠. 그리고 국가대표가 꼭 될 겁니다. 태극마크를 달고 힘차게 공을 던지는 원삼이가 얼마나 부러웠는데요. 얼마나 영광스러웠겠어요. 저도 꼭 국가대표 되고 싶어요. 열심히 하면 할 수 있겠죠?”

이경호 기자 rush@donga.com

[화보]히어로즈 마운드는 내가 지킨다… 이현승 투수
[관련기사]김시진 감독의 ‘이현승 아끼기 작전’
[관련기사]이현승 ‘싱싱투’…좌완에이스 떴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