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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9년 2월 28일 07시 5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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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는 대만이 중국을 이길 수 있는 극소수 분야이자 국제사회의 미아인 대만을 세계에 알리는 몇 안 되는 통로다. 현재 대만의 메이저리거는 ‘대만야구의 총통’ 격인 왕젠민 외에 궈홍즈 후진룽(이상 LA 다저스)이 트로이카를 형성하고 있다. 1998년 방콕 아시안게임 결승전에서 박찬호 상대로 홈런을 쳐 한국팬에게 각인된 천진펑(전 다저스)은 대만 사상 첫 빅리거였다. 천진펑(라뉴)은 현재 대만 최고 인기타자로 군림하고 있다. 이외에 차오친후이(전 콜로라도)도 빅리그에서 던졌다.
지금이야 미국행이 주류지만 원래 대만야구의 해외개척 루트는 일본이었다. 군계일학은 대만 리틀야구의 황금시대를 연 궈위안즈(전 주니치)와 1984년 LA 올림픽 은메달의 주역 궈타이위안(전 세이부)-장성슝(전 롯데)이다. 이 중 요미우리와 세이부의 쟁탈전으로 일본-대만간 국제분쟁까지 초래한 궈타이위안은 와타나베 히사노부-구도 기미야스와 함께 1980년대말부터 90년대초까지 세이부 황금시대를 열었다. 그 다음 세대로 슈밍지에, 장즈지아가 세이부에 진출했고, 현재도 린언위(라쿠텐), 천웨이인(주니치), 린웨이추(한신) 등이 도전중이다. 868홈런의 왕정치도 대만계다.
일본은 식민지 대만에 야구를 소개했지만 홍예야구단이 일본을 꺾었을 때, 야구는 국민스포츠로 자리매김했다. 리틀야구-실업야구를 축으로 발전한 대만은 프로야구 CPBL을 1990년 열었다. 이후 1995년 TML이 생겨나 양대리그가 됐지만 2003년 CPBL에 흡수, 6구단 체제로 재편됐다. 그러나 2008년 폭력단이 낀 승부조작 사건과 만성적자로 2구단이 소멸, 4구단(숑디-신농-퉁이-라뉴) 체제로 2009시즌을 맞는다.
김영준 기자 gatzb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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