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하기
입력 2009년 2월 25일 08시 02분
공유하기
글자크기 설정
○대한민국이 의지했던 어깨
2000시드니올림픽, 2002부산아시안게임, 2003아테네올림픽예선, 2006월드베이스볼클래식, 2006도하아시안게임, 2007타이중아시아야구선수권, 2008베이징올림픽최종예선, 2008베이징올림픽. 숨이 찰 정도의 리스트. 박진만이 2000년 이후 함께 해온 한국 야구 영욕의 순간들이다. 하지만 그는 “이미 베이징올림픽 최종예선과 본선 때도 어깨에 주사를 맞고 뛰었다”고 털어놨다. 그 때부터 시작된 거다. 아픈 어깨와의 싸움이.
그는 또 말했다. “정밀검사를 받았더니 지난해보다 염증이 더 심해졌다고 한다. 심하면 올 시즌 후에 수술을 하게 될 수도 있다.” 그리고 덧붙였다. “이제 주사를 맞고 참아가면서 국가대표로 뛸 나이는 아닌 것 같다. 한 해, 한 해가 선수 생명과 직결되기 때문에 나도 두렵다.”
그러고 보면 한국 야구는 그의 어깨에 참 많은 부분을 의지해왔다. 유격수 출신인 김민호 수비코치는 “유격수의 기본은 스로잉”이라고 했다. 거리와 상황에 따라 완급을 조절해 송구할 수 있는 능력. 박진만이 바로 그걸 갖췄다는 거다. 그 어깨가 세계 4강을 이끌고, 금메달을 뒷받침했다. 하지만 박진만은 “던질 수가 없다”고 했다. 팔에 힘을 싣는 것조차 힘겨워했다.
○끝까지 붙잡으려 했던 희망
금세 떠날 수 있을 거라고 믿었다. 그런데 뜻밖의 장벽에 부딪혔다. 그의 존재감은 스스로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컸다. 김인식 감독은 “결정적인 순간마다 늘 타구가 가는 방향에 박진만이 있었다. 2라운드에서만이라도 뛸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강흠덕·한경진·조대현 트레이너 세 사람과 한화 손혁 인스트럭터가 밤낮으로 그의 재활에 매달렸다. “마음대로 아플 수도 없다. 삶이 너무 무겁다”던 그는 도착한 지 정확히 나흘 후에 이렇게 말했다. “오기 전까지만 해도 ‘무조건 안된다’는 마음이었다. 하지만 그 ‘무조건’을 떼어버려야겠다는 생각이다. 점점 나아지고 있다. 꼭 나가야 한다면 2라운드라도 뛰고 싶다.”
WBC 사무국은 한국야구위원회(KBO)의 애타는 질문에 “개막 이틀 전까지 최종엔트리 변경이 가능하다”고 답변해왔다. 그렇게 박진만의 ‘일단 합류’가 결정되는 듯 했다. 하지만 코칭스태프는 꿰뚫어봤다. 미안한 마음에 차마 고개를 내젓지 못하는 박진만의 심정을. 최종탈락자를 결정하던 22일 밤, 3시간에 걸친 난상토론의 결론은 결국 ‘박진만 제외’였다. 그 어느 때보다 어려운 결정이었다.
○후배 박기혁을 향한 박진만의 조언
박진만은 “솔직히 생각도 못했다”고 했다. 9년 간 빠짐없이 달아온 태극마크를 순식간에 떼어내게 된 기분. 말로는 표현할 수 없을 터였다. 대표팀 선수들이 모두 연습경기를 위해 옆 구장으로 떠난 후, 홀로 남아 타격 훈련을 하던 그는 담담하게 말했다. “시원섭섭하다.” 하지만 자신의 뒤를 잇게 된 박기혁을 격려하는 여유도 보였다. ‘국가대표 주전 유격수’라는 부담스러운 자리. 해주고 싶은 얘기가 누구보다 많았다. 그는 “기혁이는 발놀림이 좋아서 잘 할 수 있다. 자신감을 가졌으면 좋겠다”고 했다. 또 “도쿄돔은 우리나라 대구구장 잔디와 비슷하다. 돔구장이라 주변 공기가 좀 다르긴 해도 3-4회만 치러보면 금세 적응이 될 것”이라고 했다. 반면 메이저리그 구장에서는 푹신한 천연잔디를 오히려 주의하라고 했다. 발에 닿는 느낌이 다르고 타구의 속도도 다르니 한 경기 정도는 적응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그리고 그는 대표팀 관계자에게 슬쩍 조언했다. “충분히 괜찮은 선수니까, 심리적인 부분만 좀 붙잡아줘.” 들뜨지도 위축되지도 말라는 선배의 충고다.
○태극마크가 부끄럽지 않은 선수
누군가 그에게 ‘왜 1차 엔트리가 발표됐을 때 일찌감치 백기를 들지 않았느냐’고 물었다. 그는 이렇게 답했다. “나아질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낫는다면 무조건 가야했기에, 차마 아프다는 말을 못했다.” 박진만에게 국가의 부름이란 그런 의미다. 가능한 한 최선을 다해 응해야 하는 것. 그래서 김인식 감독이 “무조건 하와이로 와서 일주일 버텨봐라”고 했을 때도 군소리 없이 응했다. 당장이라도 누워서 쉬고 싶었지만 짐을 꾸려 먼 곳까지 왔다.
이번에도 그는 국가의 뜻을 따른다. 그러면서도 “내가 괜히 와서 폐만 끼치고 가는 것 같아 마음이 무겁다”며 고개를 흔든다. 박진만은 그런 선수였다. 그는 23일 호놀룰루 공항 출국장으로 들어서면서 “이제서야 도중에 떠나는 선수들의 심정을 알 것 같다. 누구보다 열심히 한국팀을 응원하겠다”고 했다.
하와이|배영은 기자 yeb@donga.com
사진=김종원 기자 w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