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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8년 10월 25일 08시 2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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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자신만만하게 들릴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삼성 박진만(32·사진)이 이런 얘기를 했다면 대부분 고개를 끄덕일 겁니다. 1996년 현대에서 데뷔해 13시즌을 치르는 동안, 그가 가을잔치를 거른 건 단 두 해(1997년·1999년) 뿐이니까요. 이만한 ‘행운’도 흔치 않습니다.
박진만은 포스트시즌에만 74경기에 출전했습니다. 올해 준PO 3경기, PO 6경기를 채우면서 마흔 살 노장 김동수(히어로즈)와 나란히 역대 최다경기에 출장했죠. 그 중에서도 한국시리즈가 45경기나 됩니다. 박진만은 “우리 팀은 만날 한국시리즈에 직행했으니까…”라며 씩 웃습니다.
물론 천하의 박진만에게도 ‘처음’이 있었습니다. “입단 첫 해에 준PO부터 한국시리즈까지 쭉 치렀거든요. 그 땐 정말 떨렸죠. 내가 어디에 어떻게 서 있는지조차 못 느낄 정도였으니까요. 그냥 아무 생각 없이, 멋도 모르고 했어요.”
그 해 한국시리즈 4차전. 그는 0-0이던 8회말 무사만루에서 결승타를 때려 선배 정명원의 노히트노런에 큰 공을 세웠습니다. 그렇게 큰 경기의 맛을 알아가면서 한국 최고의 유격수로 성장했고요. 포스트시즌 뿐 아니라 국제대회에서도 그는 언제나 단골입니다.
하지만 ‘국민 유격수’로 사는 게 쉽지만은 않습니다. 누구나 인정하는 최고라서 더 부담을 느끼는 거죠. “자기 직업 앞에 ‘국민’이라는 글자가 붙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어요. 처음 들었을 땐 무척 뿌듯하고 영광스러웠죠. 그런데 조금씩 족쇄가 되더라고요. 언젠가부터 박진만은 ‘에러를 하면 안 되는 선수’가 된 거예요. 특히 큰 경기에서 결정적인 실책이라도 하면 뒤통수를 꼭 바늘로 쑤시는 듯한 느낌이에요. 뒷목도 막 무거워지고요.” 그만큼 스트레스도 크다는 얘깁니다.
박진만이 열 한번이나 포스트시즌에 출전한 건, 아마도 ‘행운’이 아닐 겁니다. 그가 소속된 팀에는 언제나 ‘박진만이라는 유격수’가 있었으니까요. 이제 그는 여덟 번째 한국시리즈 문턱에서 아쉽게 물러섰습니다. 언젠가 박진만 없는 가을잔치를 치러야하는 순간이 온다면, 참 쓸쓸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배영은 기자 yeb@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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