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가게 친구… 우리의 시대는 저물고 있다네”

  • 입력 2006년 7월 7일 03시 0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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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봄 한철 격정을 인내한 나의 사랑은 지고 있다.

분분한 낙화… 결별이 이룩하는 축복에 싸여 지금은 가야 할 때,

무성한 녹음과 그리고 머지않아 열매 맺는 가을을 향하여

나의 청춘은 꽃답게 죽는다.

헤어지자 섬세한 손길을 흔들며 하롱하롱 꽃잎이 지는 어느 날

나의 사랑, 나의 결별, 샘터에 물 고이듯 성숙하는 내 영혼의 슬픈 눈.

- 이형기 ‘낙화’》

경기가 끝나자 승자는 패자에게 다가갔다. 유니폼을 주고받은 양 팀 주장은 서로의 벌거벗은 상체를 뜨겁게 껴안았다.

34세 동갑내기로 레알 마드리드에서 한솥밥을 먹었던 축구 거장 지네딘 지단(프랑스)과 루이스 피구(포르투갈).

우리 시대 축구를 한 차원 끌어올린 ‘예술가’와 ‘발명가’는 6일 뮌헨 알리안츠아레나에서 90분 내내 투혼을 불살랐다.

조별리그 부진으로 ‘늙은 수탉’이란 비난까지 들어야 했던 지단. 그러나 그는 브라질과의 8강전에서 맹활약을 펼친 뒤 이날 ‘당대 최고의 미드필더’로 부활했다. 폭넓은 움직임과 예리한 패스, 절대로 공을 빼앗기지 않는 집중력이 돋보였다.

지단은 전반 33분 앙리가 얻어 낸 페널티킥을 결승골로 이끌어 ‘신화’의 마무리를 화려하게 장식했다. 상대는 잉글랜드와의 8강전에서 승부차기를 3개나 막아 냈던 ‘거미손’ 히카르두였지만 지단의 침착한 슈팅에는 히카르두의 손끝도 닿지 못했다.

피구의 투혼도 빛났다. 초반부터 강한 중거리포로 상대 골문을 위협했다. 후반 9분 페널티 지역 중앙에서 파울레타에게 찔러준 전진 패스는 압권이었다. 후반 32분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의 번개 같은 프리킥이 프랑스 골키퍼 파비앵 바르테즈의 몸을 맞고 튕겨 나오자 피구는 본능적으로 허공에 솟구쳤다. 하지만 회심의 헤딩슛은 야속하게도 허공으로 뜨고 말았다.

자신의 축구인생 처음으로 월드컵 4강에 나선 피구는 반칙도 양 팀 통틀어 가장 많은 5개를 범할 정도로 고군분투했다.

이날 경기는 지단의 프랑스가 이겼지만 둘 사이에는 승자도 패자도 없었다.

두 영웅이 보여 준 보석 같은 투혼과 우정은 그들의 이름과 함께 이제 신화로 남게 됐다.

정재윤 기자 jaeyu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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