펠레의 저주보다 무서운 ‘하얀 펠레’의 악연

  • 입력 2006년 6월 22일 16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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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이 싫다 싫어!”

벼랑 끝에 몰린 브라질 출신 지쿠 일본 축구대표팀 감독이 친정인 브라질을 상대로 출사표를 던졌다. 하지만 선수시절부터 그를 따라다니는 ‘월드컵 악연’을 끊기에는 상대가 버겁다.

지난해 12월 독일월드컵 조추첨이 진행된 날. 지쿠 감독은 “브라질과의 경기는 매우 감정적일 것”이라며 “무엇보다 브라질 국가가 연주될 때 내 마음은 고통스럽겠지만 일단 경기가 시작되면 경기에 집중하겠다”고 씁쓸한 소감을 밝혔다.

그로부터 6개월 후. 다 잡은 호주를 통한의 역전패를 당하고 배수의 진을 치고 만난 크로아티아와는 천신만고 끝에 승점 1을 따냈다. 16강 진출을 위해서는 승점 3이 필요하고 그것도 2점차 이상의 승리가 필수조건인데 공교롭게도 상대는 브라질이다.

외나무다리 끝에서 만난 골리앗을 앞두고 지쿠 감독은 “일본은 브라질과 싸운 적이 있다. 나는 브라질이 특별히 두려운 상대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애써 태연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지난해 독일 컨페더레이션스컵에서 일본은 브라질을 상대로 2-2 무승부를 이끌어낸 바 있다.

문제는 지쿠 감독이 월드컵에서 재미를 본 적이 없다는 점.

지쿠 감독은 ‘하얀 펠레’로 불리며 78, 82, 86년 월드컵에서 브라질 대표팀을 이끌었으나 정작 우승 경험은 없다. 특히 86년 프랑스와의 8강전에서 지쿠는 1대 1 무승부 상황에서 페널티킥을 실축해 결국 역전패한 아픈 기억을 갖고 있다.

불혹의 나이에 93년 일본 J-리그 창단 멤버로 뛴 그는 98년 프랑스 월드컵에서 브라질 기술고문으로 부임해 팀을 결승에 진출시켰지만 프랑스에게 우승트로피를 내줬다. 2002년에는 일본대표팀을 16강에 진출시키며 이름값을 했지만 공동개최국인 한국이 4강까지 진출해 빛이 발했다.

내심 히딩크에게 복수의 칼을 갈던 그는 4년 만의 리턴매치에서 막판 소나기골을 허용하며 또 무릎을 꿇었다.

dpa 통신, 로이터 통신 등 외신들은 지쿠 감독의 ‘월드컵 악연’을 일제히 소개하며 (브라질을 꺾는) 이변이 없는 한 악연이 이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심지어 크로아티아 전에서 결승골을 넣은 브라질 대표팀 미드필더 카카(24.AC밀란)가 “지쿠는 모든 브라질인의 우상이다. 그가 월드컵에서 번번이 성공하지 못하는 것은 매우 유감스러운 일”이라며 “그렇다고 해서 그와 그의 선수 시절 명예나, 인간으로서의 가치가 떨어지는 것은 아니다”고 해명할 정도.

한편 월드컵이 끝난 후 지쿠 감독은 일본을 떠날 예정이다. 지쿠는 “브라질 출신 감독은 늘 괴롭힘을 당한다”며 “브라질 국가 대표팀 감독 자리도 싫다”고 손사래를 쳤다.

정기철 스포츠동아 기자 tomj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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