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일 서울 강남구 개포동 대한적십자사 서울남부혈액원 저장고의 상당 부분이 비어있다. 적십자 혈액관리본부는 ‘두쫀쿠’ 이벤트 등으로 헌혈인구가 늘어 혈액보유량이 2일 현재 5.5일치로 늘었지만 여전히 부족한 상황이라고 밝혔다. 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국내 최다 헌혈 기록을 가진 진성협 씨(62)는 요즘도 한 달에 두 번씩 제주혈액원 신제주센터에서 헌혈을 한다. 1981년부터 총 헌혈 횟수는 805회에 이른다. 헌혈 정년인 만 69세까지 1000회를 채우는 게 목표다. 진 씨는 “백혈병에 걸린 친구에게 헌혈 증서를 주려고 헌혈을 시작했다”며 “누군가를 살릴 수 있다는 보람 때문에 헌혈을 멈출 수 없다”고 했다.
진 씨처럼 정기적으로 헌혈하는 인구는 늘고 있지만 1년에 한 번이라도 헌혈에 동참하는 국민은 꾸준히 감소하고 있다. 신규 헌혈 참여자를 늘리기 위해 각 혈액원은 최근 유행하는 ‘두쫀쿠(두바이 쫀득 쿠키)’를 증정품으로 내거는 등 안간힘을 쓰고 있다. 안정적인 혈액 수급 관리를 위해선 학생과 군인 등 단체 헌혈에 기대지 말고 개인의 자발적인 헌혈 동참을 늘려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 헌혈 동참 국민 갈수록 줄어
2일 김윤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대한적십자사에 받은 ‘최근 5년 헌혈 현황’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헌혈 건수는 총 263만5546건으로 2021년(242만6779건) 대비 8.6% 늘었다. 반면 같은 기간 헌혈자 수는 119만9640명에서 117만4728명으로 2.1% 줄었다. 정기 헌혈자 덕분에 헌혈 건수는 늘었지만, 헌혈에 동참한 사람은 오히려 줄어든 것이다. 1인당 헌혈 횟수는 2.02회에서 2.24회로 늘었다.
연령대별로는 10, 20대가 전체 헌혈 인구의 62.9%를 차지했다. 30, 40대는 27.0%, 50대 이상은 10%를 밑돌았다. 직업별로 보면 회사원이 28.3%로 1위였고 이어 대학생(24.6%), 고등학생(18.2%), 군인(13.6%) 순이었다. 적십자사는 “군대와 학교, 회사 등 단체 헌혈 비중이 크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지역별 격차도 컸다. 헌혈률(총인구 대비 헌혈 건수)은 군부대가 많은 강원이 10.3%로 가장 높았고 광주(7.9%), 제주(7.2%) 등이 뒤를 이었다. 반면 경기(3.5%), 인천(3.9%) 등은 헌혈 참여율이 낮았다.
● ‘두쫀쿠·아이돌’로 헌혈 유도…자발적 헌혈 늘려야
29일 대구 수성구 헌혈의집 신매광장센터에서 헌혈에 참여한 한 시민이 증정품으로 받은 ‘두바이 쫀득 쿠키’를 들고 있다. .2026.1.29/뉴스1겨울철 혈액 수급이 우려되자 전국 혈액원은 기념품 증정 행사를 확대하거나 아이돌 가수가 참여하는 캠페인을 펼치며 헌혈자 모집에 나섰다. 최근서울중앙혈액원 소속 7개 헌혈의 집이 두쫀쿠를 증정하는 행사를 진행한 결과, 하루 헌혈자는 전주 대비 153.8%(340명) 늘었다. 적십자사는 지난달 아이돌 가수 ‘엔하이픈’과 손잡고 열흘간 헌혈 캠페인을 벌이기도 했다. 적십자사는 “적극적인 팬덤 문화와 헌혈을 결합시키는 등 생애 첫 헌혈 경험을 늘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군대, 학교 같은 단체 헌혈에 의존하기보다 개인의 자발적 헌혈 문화를 확산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저출산 고령화로 헌혈 인구의 다수를 차지하는 10, 20대가 줄면서 혈액 확보가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주열 남서울대 보건행정학과 교수는 “한국은 기념품과 봉사활동 점수 등 보상을 바라고 참여하는 헌혈이 많다”며 “헌혈 선진국이 되려면 자발적 헌혈이 일상이 되도록 정부와 시민사회가 인식 개선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헌혈을 단순 봉사가 아닌 ‘본인의 건강 상태를 확인할 수 기회’가 되도록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홍석철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헌혈을 하면 ‘헬스케어 서비스’를 제공하는 등 새로운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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