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극점 탐험]12월10일 11일째 남극에선 감기 안걸린다

입력 2003-12-16 15:12수정 2009-09-28 0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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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10일 운행 중 무풍에 햇살이 따갑게 느껴지는 날씨 속에 양말을 벗고 발을 씻고 있 는 막내 이현조 대원. 방풍쟈켙도 벗은 상태이다.
날씨 : 맑음

기온 : 영하 20도

풍속 : 무풍

운행시간 : 08:00 - 19:00(11시간)

운행거리 : 22.9km (누계 : 160.1km)

야영위치 : 남위 81도18분 555초 / 서경 80도37분776초

고도 : 798m

남극점까지 남은 거리 : 970.6km

아침부터 맑은 하늘은 대원들을 기대감으로 몰아넣는다. 비록 기온이 영하 20도였지만 출발준비를 하는 대원들의 표정은 마냥 즐겁기만 하다. '설마 어제와 같은 도로공사는 없겠지'하는 것은 아마도 대원들의 공통된 생각이리라. 시린 손으로 썰매를 거의 꾸릴 즈음 박대장은 자세를 잡고 나침반으로 방향을 잡는다. 막내 이현조 대원이 마무리 짐정리를 하던 중에 박대장이 앞서간다. 뒤따라오라는 손짓을 허공에 남긴 채.

눈에 발이 빠질 것 이라는 예상에 이치상 대원은 스키를 신는다. 출발 후 15분쯤, 박대장도 스키를 신는다. 오늘도 역시 도로공사를 해야만 하나보다. 어제보다 눈은 더 깊이 썰매를 막고 나선다. 바닥의 런너가 무색하게 깊은 도로자국 만을 남긴 채 억지로 끌려가는 썰매.

스키를 신었던 이치상 대원이 촬영을 마치고 뒤따라 대원들을 따르려하나 자꾸만 뒤처져 결국 두 시간을 못 넘기고 스키를 벗고 만다. 썰매무게가 아직 120kg 정도이니 스키로 끌기는 적절치 않다. 첫 간식시간에야 비로소 대원들이 한자리에 모인다.

아침 8시 운행을 시작할 즈음에 해는 남쪽만을 바라보고 가는 대원들의 왼쪽 하늘에 걸쳐 있다. 그러다가 시간이 지남에 따라 해는 대원들의 등 뒤로 돌아 운행을 마칠 무렵에는 우측 어깨쯤에 와 있다. 오늘처럼 화창한 날은 got빛이 와 닿는 부분에만 따뜻함이 느껴진다. 몸 그림자의 반대쪽은 그대로 입김이 얼어붙는 '동토'다. 해의 위치에 따라 왼쪽 팔-등-오른쪽팔 순으로 따스한 기운이 와 닿는데 그 반대편은 엄청 시리다. 강철원 대원의 바지 오른쪽 주머니에 들어있던 온도계가 오후 5시경 영상 17도를 기록했는데 강대원의 모자에 달린 늑대 털의 왼쪽부분에는 입김이 하얗게 얼어붙어 있다. 11시의 첫 간식시간 이후 바람 한 점 없는 설원에는 직접 와 닿는 태양과 설사 면에 반사되는 열까지 더해져 덥게 느껴졌다. 썰매 안의 수통에 넣어 둔 물은 얼고 있는데 탐험대원들의 몸에서는 열이 난다. 시간이 지날수록 온몸에 땀이 흘러 '남극에 와 있는 거 맞느냐'고 서로에게 반문한다. 이현조 대원이 먼저 오버 쟈켓을 벗었다. 얼마 후에는 박대장도 벗었다. 이현조 대원은 휴식시간을 이용해 양말을 벗고 눈으로 발을 씻고 양말을 갈아 신는다. 남극에서 이런 날이 있다니. 아침 기온이 영하 20도였는데.

오후 5시 마지막 휴식, 박대장의 표정이 밝지 못하다. 푹푹 빠지는 눈이 짜증난다며 투덜거린다. 어느 정도여야지. 게다가 온 몸은 땀으로 흠뻑 젖고, 속도는 안 나고. 다른 대원들도 힘들기는 마찬가지. 탐험 3일째부터 발뒤꿈치가 벗겨진 오희준 대원은 박대장의 뒤를 떨어질세라 바짝 붙어 걷는다. 상처부위에 후시딘을 바르는 것이 전부. "솜이나 거즈를 대고 반창고를 바르라"고 그래도 "상처가 낫지 않는다"며 붙이지 않는다. 하여튼 뚝심하나는 알아줘야 한다. 이치상 대원의 발뒤꿈치는 그래도 좀 나은 편이다. 왼쪽 뒤꿈치가 동전크기 만하게 벗겨져 쓰라리긴 하지만 두어 시간 걷다보면 통증도 없다. 오른쪽은 어느새 아물어있다. 늦게 박대장의 발뒤꿈치가 까지기 시작하더니 팥알만한 크기가 완두콩 크기가 되자 반창고로 상처를 감싸 더 커지는 것을 막는다. 오늘도 강철원 대원은 힘에 부치는지 10분 정도 뒤로 처져 있다가 먼저 도착한 대원들이 텐트를 다 친 후에야 지친 표정으로 캠프에 도착했다. 썰매에 붙이지 못한 스티커를 붙이느라 쉴 틈이 없다. 다른 대원들이 텐트 안으로 들어와 옷과 양말, 신발을 빨래 줄에 걸어 놓고 쉬는 동안에도 바깥정리를 마무리한 뒤 마지막으로 텐트 안으로 들어온다. 얼굴이 부어있다.

탐험 11일을 넘기면서 몸의 이 구석 저 구석에 대자연과 맞서다 생긴 '영광의 상처'들이 남는다. 남극탐험은 남극이라는 대자연과 탐험대간의 전자오락 게임과도 같다. 탐험대는 무게가 가벼우면서 칼로리가 높은 식량과 추위에 잘 견디도록 개량된 옷을 입고 바람에 강한 텐트를 준비한다. 남극은 블리자드와 화이트 아웃을 특공대로 내세워 이방인들과 맞서게 한다. 가끔 견디기 힘든 혹한으로 탐험대를 궁지에 몰아넣는다. 대자연을 상대로 한 탐험대의 도전과 투쟁은 부질없어 보인다. 사실 자연을 상대로 한 싸움이라 승산 없는 게임이다. 오래전부터 그래왔다. 두 달이 될지 얼마가 될지 모르는 탐험의 열하루를 보낸 대원들은 입술이 부르트고 사타구니가 쓸리고 발은 부르터 고통스럽기 짝이 없다. 지금보다 더 험난한 남은 기간을 무엇으로 버텨낼까. 대원들의 몸에서는 벌써부터 악취가 풍겨난다. 씻을 수도 없다. 모든 것이 불리한 승산 없는 게임이다.

그럴까.

아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빛나는 대원들의 눈빛을 보면 결코 승산 없는 게임은 아니다. 살갗이 쓸리는 고통은 오히려 대원들을 자극한다. 탐험대원들의 고래 같은 심장의 고동소리는 남극과 한번 맞서볼 만하다는 외침처럼 들린다. 살아있는 한 희망은 있다.

똑같은 량의 저녁식사를 준비했는데 오늘은 압력솥의 바닥이 깨끗하다. 박대장의 오징어국은 어제에 이어 오늘도 대원들의 입맛을 돋우는데 역할을 톡톡히 한다.

밤 11시가 넘은 시간, 해는 유난히 따스한 기운을 텐트위로 보내고 있다.

곤히 잠든 대원들의 숨소리가 힘든 하루를 보냈음을 말해준다.

*남극상식:남극대륙에선 감기에 걸리지 않는 답니다. 왜냐하면 너무 춥고 청정지역이어서 감기바이러스가 살 수 없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다른데서 감기가 걸려서 오면 그것은 할 수 없답니다. 바이러스가 따뜻한 사람 몸 안에서 살기 때문이지요.

남극탐험대 이치상 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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