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창선 신임 선수촌장 "선수들 정신력 강화가 최우선"

  • 입력 2000년 1월 4일 19시 42분


“‘헝그리 정신’을 되살려야 합니다.”

시드니올림픽을 8개월여 앞둔 4일 ‘국가대표훈련의 산실’인 태릉선수촌의 촌장으로 임명된 장창선씨(57)는 “운동 여건은 좋아졌으나 선수들의 정신상태는 과거에 비해 해이해진 것 같다”고 첫마디를 꺼냈다.

그는 “과거로 돌아가자는 건 아니지만 선수들의 정신력을 강화하는데 초점을 맞춰 선수촌을 운영하겠다”고 밝혔다. 그 자신이 역경을 딛고 66년 6월18일 미국 오하이오주 토레도 대학체육관에서 건국 이후 첫 세계선수권대회 금메달을 조국에 안긴 스타 레슬링 선수 출신.

당시 자유형 플라이급에 출전한 그는 결승리그에서 미국의 선더스, 일본의 요시다와 함께 동점으로 경기를 마쳤다. 벌점계산에서 선더스는 동메달로 밀려났으나 벌점마저 똑같았던 그와 요시다는 30분 후 벌어질 계체량으로 메달을 가려야했다. 장씨는 1g이라도 살을 빼기 위해 지옥같은 한증탕에서 30분을 견뎌냈고 결국 51.2kg으로 요시다를 500g차로 따돌리고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그는 가난했던 60, 70년대 어린이들의 영웅이었다. 4대독자로 1남2녀 중 둘째로 태어난 그는 6·25전쟁 직전 아버지가 “돈을 벌어 오겠다”며 집을 나가는 바람에 어머니가 가정부, 콩나물 새우젓 장사 등으로 밑바닥 생활을 전전하며 그를 키웠다.

그는 초중학교 시절 가사에 보탬이 되려고 새벽엔 신문배달, 오후엔 얼음과자와 찹쌀떡을 팔러 산동네를 누비고 다녔는데 이때 만든 단단한 하체가 훗날 대 선수의 기반이 됐다.

인천 동산중 1년 때 레슬링을 시작, 인창고에서 본격적인 트레이닝을 받은 그는 62년 첫 국가대표로 출전한 자카르타 아시아경기대회서 은메달을 획득했고 한일 맞대결로 펼쳐진 64도쿄올림픽에서 석패,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그는 이때 어머니로부터 “금메달을 땄으면 더 좋았을걸”이라는 말을 들은 것이 2년후 금메달 획득의 원동력이 됐다고 회고했다.

67년 은퇴한 그는 이후 대한레슬링협회 전무이사 부회장을 거쳐 삼성생명 레슬링단 감독이사 상무이사를 역임하는 등 가난에서 벗어났으나 87년부터 92년 사이 어머니와 아내를 고혈압으로, 돌아온 아버지와 누이동생 둘째 아들을 심장병으로 잇달아 가족들을 잃는 불운에 울어야 임했다.

<배극인기자> bae2150@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