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구연의 야구읽기]무명선수도 美가면 언론 호들갑

  • 입력 1998년 3월 20일 20시 08분


이제 그만 미국땅에서 한국야구의 3류 코미디같은 해프닝은 끝냈으면 좋겠다. 박찬호의 성공에 자극받은 국내선수들이 청운의 꿈을 안고 큰 무대에 도전해보는 것은 좋다. 그러나 그 주위를 둘러싼 몇몇 야구인, 에이전트를 자칭하는 사람들, 미국 구단관계자들이 보여준 추태는 위험수위를 넘어선 지 오래다.

필자가 미국에 머무는 동안 가장 큰 해프닝 중의 하나는 김선우 사건. 10일 김선우가 메이저리그 시범경기에 등판할 것이라는 일부 보도를 보고 깜짝 놀라 더니든구장을 찾았을 때의 일은 지금 생각해도 우습기만 하다.

한국 피가 섞인 보스턴 레드삭스의 윈델 킴코치를 만나 김선우의 등판일정을 물었다. 그러자 그는 “아니 미스터 허, 김선우가 도대체 누구냐”며 오히려 반문하는 것이 아닌가.

그래도 혹시나 싶어 지미 윌리엄스감독에게 또 물어봤다. 그러자 그 역시 “감독도 모르는 선수가 어떻게 오늘 게임에 뛸 수 있느냐. 혹시 미스터 허가 갈기머리 왼손투수(이상훈)를 잘못 알고 말하는 것 아니냐”며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왜 우리는 무명에 가까운 선수조차 미국 근처에만 가면 이토록 야단법석일까.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스포츠 사대주의’에 빠져있는 것이 아닐까.

하기야 일본 프로야구의 정상급 투수였던 노모 히데오도 미국에선 신인으로 취급받아 95년 신인왕이 됐고 며칠후 공개입찰에 나서는 이상훈도 신인이니 메이저리그의 콧대가 높은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젠 에이전트라고 자칭하는 사람들이 부풀려 흘리는 뉴스에 더 이상 속지 말아야 한다. 또 보스턴처럼 깔끔하게 뒷처리를 못하는 팀에 대해서는 경계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

오늘부터 우리 프로야구의 시범경기가 열린다. 김동주란 걸출한 신인을 비롯해 볼거리가 많다. 프로야구 개막과 함께 스포츠사대주의를 떨쳐버리는, 3류코미디같은 해프닝에 놀아나지 않는 우리야구를 소중히 여기는 한해가 됐으면 한다. 우리 것을 잃으면 모든 것을 잃게 된다.

허구연(야구해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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