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이스트 교수 149명·국가 출연연 연구자 포섭 메일에 노출
최수진 의원 대표발의 ‘국가연구개발혁신법 개정안’ 본회의 통과
뉴스1
우리나라 과학기술 연구진을 겨냥한 중국의 기술 포섭 시도가 전방위적으로 확산하고 있어 이를 방어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가 새롭게 마련됐다. ‘국가연구개발혁신법 개정안’이 본회의를 통과함에 따라 중요 연구를 선제적으로 보호하는 안보 체계를 구축할 전망이다.
주요 연구자 포섭 메일에 노출…연봉 4억 등 당근 제안
27일 업계에 따르면 한국과학기술원(카이스트)을 비롯해 다수의 정부출연연구기관(출연연) 연구자들이 그동안 중국 정부의 지원을 내세운 영입 제안에 지속해서 노출되어 온 것으로 파악됐다.
지난해 초 카이스트 교수 149명은 ‘중국의 글로벌 우수 과학자 초청 사업’이라는 제목의 동일한 이메일을 수신했다. 이메일에는 연간 200만 위안(약 4억 원)에 이르는 급여와 주택, 자녀 학자금을 제공하겠다는 지원 내용 등이 포함됐다. 카이스트 연구보안팀의 자체 조사 착수 이후 국가정보원은 전국 주요 대학과 출연연을 대상으로 전수조사를 실시했다.
조사 결과, 한국기초과학지원연구원(KBSi) 226건, 한국재료연구원(KIMS) 188건,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 127건, 국가독성과학연구소(KIT) 114건 등 기관별로 수백 통의 포섭 메일이 유포된 정황이 확인됐다.
이들 이메일은 ‘1000fb.com’, ‘1000help.tech’, ‘1000talent.online’ 등 중국의 해외 인재 유치 프로그램인 ‘천인계획’을 연상시킬 수 있는 도메인을 주로 사용했다. 한국과학기술한림원이 진행한 설문조사에서는 회원 200명 중 123명(61.5%)이 최근 5년 내 해외 연구기관으로부터 영입 제안을 받은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이 중 82.9%가 중국으로부터 온 제안인 것으로 나타났다.
뉴스1 진화하는 포섭 전술…‘천인계획’ 이름 지우고 개별 접근
국정원은 이러한 일련의 사태를 해외 인재 유치가 아닌 중국이 해외 핵심 기술을 확보하기 위해 벌이는 국가 차원의 전략적 포섭 공정이라고 규정했다. 앞서 2020년에는 천인계획에 참여했던 카이스트 교수가 자율주행차 관련 핵심 기술을 중국에 유출하다 적발된 바 있다.
기술 유출 논란이 일고 국내 기관들이 메일 도메인을 차단하는 등 방어에 나서자 접근 방식은 한층 교묘해졌다. 천인계획이라는 명칭을 숨기고 ‘외국인 전문가 프로젝트’(Foreign Expert Project), ‘치밍’(Qiming), ‘중국 재능 혁신 허브’(China Talent Innovation Hub), ‘111 프로젝트’ 등 새로운 이름을 내건 변종 프로그램이 등장했다.
또 불특정 다수를 향한 단체 메일 발송에서 벗어나 개별 접근 방식으로 전략을 전환했다. 출장이나 협력 프로젝트 명목으로 국내 연구자를 중국으로 반복 초청해 접점을 넓히고 친밀도를 높이는 수법이 활용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실제로 최근 5년간 10회 이상 중국을 방문한 출연연 연구자가 27명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연구보안, 곧 국가안보…혁신법 개정해 글로벌 스탠다드 확립
연구, 연구자 탈취 시도가 고도화되고 있음에도 기존 국내의 대응은 교수, 연구자 개인의 자율 신고와 내부 경고 수준에 그쳐 구조적인 한계가 지적되어 왔다.
‘악의적 해외인재유치프로그램’ 참여 연구자에게 연방 연구비 지원을 제한하는 미국이나 해외 기관 협력 시 정부 사전 승인·위험평가를 의무화한 영국, 유럽연합(EU)의 강력한 대응 조치와 대비되는 지점이다.
최수진 국민의힘 의원이 국회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최수진 의원실 제공이러한 제도적 공백을 해소하기 위해 최수진 국민의힘 의원은 ‘국가연구개발혁신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발의했다. 개정안은 지난달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주요 내용은 글로벌 스탠다드에 부합하는 안전한 국제연구협력 기반 구축 등이다.
핵심적으로는 연구 기획 단계부터 잠재적 중요기술을 선제적으로 보호하기 위해 기존 보안과제와 일반과제 사이에 ‘민감연구과제’라는 새로운 보안 등급을 신설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은 국정원장과 협의해 범부처 보안지침을 수립해야 한다. 중앙행정기관의 장은 유출 시 국가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해 추가 관리가 필요한 과제를 민감과제로 분류할 수 있다.
연구보안 현장 업무를 효율적으로 지원하기 위해 국가연구개발사업 보안 관련 상담, 교육, 실태조사 등을 수행하는 전담 기관의 지정 근거도 마련됐다.
보안과제의 성과 소유권 이전을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예외적인 상황에서는 중앙행정기관의 장에게 사전 승인을 받도록 규정해 시스템에 의한 원천적 기술 보호 체계를 갖췄다. 사전 승인 없이 소유권을 이전하거나 조치명령을 특별한 사유 없이 이행하지 않을 경우 국가연구개발사업 관련 부정행위로 간주해 제재할 수 있을 전망이다.
기초과학·산업기술 연구 업계 관계자는 “국내 기술이 고도화될수록 해외의 기술 탈취 시도는 더욱 노골적으로 변모할 것”이라면서 “이번 법안이 연구보안을 단순한 규제가 아닌 우리 기술을 지키는 든든한 방패막이로 전환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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