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지난해 말부터 약가제도 개편을 추진하는 가운데 제약업계에서는 속도 조절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이달 말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건정심)를 앞두고 ‘약가 정상화’와 ‘산업 경쟁력’ 사이에서 균형점을 찾아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보건복지부는 지난해 11월 ‘약가제도 개선방안’을 발표했다. 개선방안에는 신약 개발 생태계 조성, 필수의약품 안정적 공급체계 마련, 약가 관리 합리화 등이 담겼다. 그 중 핵심은 제네릭(복제약) 등 의약품 가격을 기존 오리지널약 대비 53.55%에서 40%대로 단계적으로 낮추는 것이다. 복지부는 이를 통해 현재 상당부분 복제약값으로 쓰이는 건강보험 재정 효율을 높이고, 국내 의약품 시장 구조를 신약 개발 중심으로 개편할 계획이다. 개선안은 26일 건정심 최종 심의를 거쳐 7월부터 시행될 계획이다.
실제 국내 복제약 가격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의 2배가 넘는다. 2022년 캐나다 약가검토위원회에 따르면 한국의 제네릭 약가는 OECD의 2.17배에 달했다. 반면 신약 도입률은 저조하다. 한국글로벌의약산업협회(KRPIA)에 따르면 신약이 글로벌 시장에 처음 출시된 이후 1년 이내 자국에 도입된 비율이 OECD 평균은 18%인 반면, 한국은 5%에 그쳤다.
낮은 약값과 복잡한 허가 절차로 인해 한국의 신약 도입 속도가 늦다는 지적도 나온다. KRPIA에 따르면 2012~2021년 세계 각국의 신약 460개 도입 속도를 비교한 결과 한국에서는 평균 허가와 급여까지 도합 46개월이 소요됐다. 이는 독일(11개월), 일본(17개월) 등과 비교하면 평균 2, 3년 뒤쳐진 속도다. 항암제와 희귀질환 신약은 글로벌 출시 후 한국에 건강보험 혜택을 못 받는 ‘비급여’로 출시되는 데도 약 27~30개월이 걸렸다.
글로벌 제약업계 관계자는 “초고령화 사회로 진입하며 암이나 중증질환에 대한 노출이 더 많아지는 만큼 신약 수요는 꾸준히 증가할 수밖에 없다”라며 “건강보험 재정을 신약에 더 많이 투입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반면 국내 제약업계는 “단계적 시행을 위한 재논의가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모으고 있다. 한국제약바이오협회는 약가 산정률을 40%로 인하하게 되면 연간 최대 3.6조 원의 매출 감소와 연간 최대 1만4000명 이상의 인력 감축을 예상하고 있다. 협회 관계자는 “개선안 시행 전 산업계에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에 대한 정부 차원의 영향평가가 먼저 필요하다”라며 “산업계가 감내할 수 있는 수준에서 속도 조절을 통한 연착륙을 할 수 있도록 시행시기 유예가 필요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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