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15층 높이서 활강후 고난도 점프…고교생 스노보더의 올림픽 도전기

  • 동아일보

‘크게 날지 않을 거면 집에 가라(go big or go home).’

빅에어의 정신을 이야기할 때 빼놓지 않고 등장하는 구절이다. 프리스타일 스노보드 종목인 빅에어는 아파트 15층 높이와 맞먹는 50m 슬로프에서 활강한 뒤 점프대를 타고 도약해 공중 연기를 선보이는 종목이다. 결선의 경우 세 번의 런(run) 중 서로 다른 기술로 얻은 상위 두 점수를 합산해 순위를 가린다. 수천 번 슬로프를 오르내리며 쌓아온 시간을 단 세 번의 도약으로 증명해야 하는 셈이다. 고교생 스노보더 유승은(18)은 “‘한 런에 한 번의 점프’가 가진 단순함이 매력적인 종목”이라며 “2026 밀라노-코르티나담페초 겨울올림픽에서는 실수 없이 모든 것을 보여주고 싶다”고 말했다.

빅에어는 2018년 평창 대회부터 올림픽 정식 종목으로 채택됐다. 내달 밀라노-코르티나담페초 대회에서 한국 선수 첫 메달에 도전하는 이탈리아 현지에서 훈련에 매진하고 있다. 특히 올림픽에서 선보일 비장의 무기 ‘백사이드 1440도’를 갈고 닦고 있다. 몸 뒤쪽으로 네 바퀴를 회전하는 이 기술은 전 세계 여자 선수 중 유승은을 비롯해 5명 남짓한 구사하는 고난도 기술이다. 유승은은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최근 중국으로 일주일간 에어매트 훈련을 다녀왔다”며 “보드에서 내려온 뒤에는 이미지 트레이닝을 반복한다”고 말했다.

평소 롤러코스터 정도는 싱거워할 정도로 겁이 없는 유승은조차 새로운 기술을 시도하거나 날씨가 좋지 않을 때면 두려움을 느낀다. 유승은은 “잡다한 생각에 어지럽다가도 슬로프 아래를 내려다보면 오직 기술에만 집중하게 된다”며 “공중 동작부터 착지 장면까지 머릿속에 그리며 마음을 다잡는다”고 했다. 긴장감을 최소화하기 위해 다른 선수들의 경기를 보지 않는 것도 그만의 루틴이다.

빅에어 선수로서의 길이 순탄치만은 않았다. 2024년 10월 스위스에서 열린 국제스키·스노보드연맹(FIS) 월드컵에서 데뷔전을 치른 유승은은 예선 1위를 기록했으나 결선에서 넘어져 복사뼈가 골절되는 부상을 당했다. 오랜 재활 끝에 작년 11월 설상 훈련에 복귀했지만 시련은 이어졌다. 훈련 이틀 만에 손목이 부러진 것. 유승은은 “이번 시즌에도 아무것도 못 한다는 생각에 정말 많이 울었다”며 “‘나는 스노보드랑 안 맞는 사람이 아닐까?’란 생각이 자신을 끊임없이 괴롭혔다”고 털어놨다. 유승은을 다시 일으켜 세운 것은 주변 사람들이었다. 발목 재활을 도와줬던 트레이닝 스태프가 공항까지 찾아와 유승은을 붙잡았고, 발목 수술 집도의는 “손목 부상이니 보드는 탈 수 있다. 대회를 뛸 수 있게 도와주겠다”고 말했다.

유승은(왼쪽)이 스노보드 월드컵 여자 빅에어에서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FIS SNS 캡처
유승은(왼쪽)이 스노보드 월드컵 여자 빅에어에서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FIS SNS 캡처
다시 일어난 유승은은 지난달 미국 콜로라도주에서 열린 월드컵 3차 대회에서 173.25점으로 오니쓰카 미야비(28·일본·174.00점)에 이어 2위를 차지하며 한국 선수 최초로 이 종목 월드컵 포디움에 올랐다.

유승은에게는 또 다른 버팀목인 가족이 있다. 초등학교 3학년 때 스키장에 놀러 갔다가 아버지를 따라 스노보드에 입문한 유승은은 “초반에는 사소한 것들로 많이 다투기도 했지만, 지금은 운전부터 빨래까지 도와주시는 아버지께 늘 감사한 마음”이라며 “심장이 떨려 올림픽은 직접 못 보겠다고 하셨는데 나중에 영상으로라도 꼭 챙겨봐 주셨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대한스키·스노보드협회 회장사를 맡고 있는 롯데도 2022년 ‘롯데 스키앤스노보드’팀을 창단해 유승은을 비롯한 유망주들을 지원하고 있다.

2018년 평창, 2022년 베이징 대회 금메달리스트 안나 가서(35·오스트리아)의 시대가 저무는 가운데 유승은은 지난달 베이징 월드컵 우승자 미아 브룩스(19·영국), 2025 세계선수권대회 우승자 무라세 코코모(22·일본) 등과 올림픽 메달을 다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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