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안 제주항공 참사 1주기]
유족들 “진상 못 밝혀… 지옥의 1년”
참사로 예비신부 딸 잃은 아버지… “1년간 왜 사고 났을까 계속 의문”
국토부 산하 조사위 셀프조사 논란… 국토부 “보안사항 공개 어려워”
28일 전남 무안공항에 마련된 12·29 제주항공 참사 희생자 분향소에서 추모객들이 헌화하고 있다. 이 참사로 지난해 12월 29일 탑승객과 승무원 등 179명이 숨졌다. 무안=박영철 기자 skyblue@donga.com
179명의 목숨을 앗아간 12·29 무안공항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가 발생한 지 1년이 흘렀지만 정확한 사고 원인은 여전히 규명되지 못하고 있다. 국토교통부 산하 항공·철도사고조사위원회(사조위)가 기체 결함을 가릴 핵심 자료인 엔진 분석 보고서 원문과 블랙박스 등 기초 자료 공개조차 거부하면서 유족들은 “무엇이 밝혀졌고 무엇이 가려졌는지조차 알 수 없는 ‘지옥의 1년’을 보냈다”며 울분을 토하고 있다.
● “원문 보고서 공개하라” 거리에 나선 유족들
참사로 결혼을 앞둔 예비 신부였던 딸을 잃은 윤순한 씨(59)는 ‘왜 사고가 났을까’라는 의문이 지난 1년간 머릿속을 떠난 적이 없다고 했다. 윤 씨는 사고가 나기 불과 2주 전 같은 비행기를 타고 태국 방콕 여행을 다녀왔다고 했다. 그는 본인이 해당 비행기를 탔을 당시 착륙할 때도 덜컹거림이 심했다며 기체 결함을 의심했다. 24일 오후 광주 북구의 한 사무실에서 만난 윤 씨는 “의구심을 풀어 줄 자료가 투명하게 공개되지 않으니 정부 조사를 믿을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실제로 사조위는 7월 조사 내용 일부를 발표하려다 유족 제지 등을 이유로 취소했다. 당시 사조위가 발표하려던 내용에 “오른쪽 엔진 손상이 심했음에도, 조종사가 왼쪽 엔진을 껐다”는 취지의 내용이 담겨 논란이 일었다. 특히 엔진 제조사인 미국 업체 측의 분석에만 의존해 기체 자체의 결함 가능성을 원천 배제하고 조종사 과실로 사고 원인을 몰아가려 한다는 비판을 받았다. 당시 유족들이 엔진 결함 여부 등이 담긴 원문 보고서 공개를 요청했지만, 사조위는 영업 비밀과 국제 관례를 이유로 현재까지 묵묵부답이다.
답답한 조사 과정 탓에 ‘거리의 투사’가 된 유족들도 있다. 24일 오후 서울 용산구 전쟁기념관 인근에서 만난 고재승 씨(43)는 이날도 시위 준비를 하고 있었다. 사고로 부모를 잃은 고 씨는 “국가 책임이 걸린 시설물 문제나 조사 과정은 덮어둔 채 개인 과실만 강조하는 듯한 인상을 받았다”고 말했다. 또 다른 유가족 서득호 씨(43)는 사조위의 소통 방식을 지적했다. 서 씨는 “정부에서 사실을 은폐하려고 한다는 생각이 들지 않도록 자료 공개를 제대로 해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이에 대해 국토부와 사조위는 블랙박스 기록은 국제민간항공기구(ICAO) 규정상 보안 유지 대상이고 보고서엔 영업 비밀이 포함돼 있어 공개하기 어렵다는 입장으로 전해졌다.
● 조사위 독립성 논란… 결론 발표 더 미뤄질 전망
유족들은 참사 직후부터 독립적인 조사 기구를 요구해 왔다. 참사 책임에서 벗어날 수 없는 국토부 소속인 사조위의 ‘셀프 조사’는 믿기 힘들다는 이유에서였다. 우려에 따라 참사 초기 국회에서는 유족들의 의견에 따라 사조위를 국토부가 아니라 국무총리실 산하로 이관하는 내용의 ‘항공·철도 사고조사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 발의됐지만 사고 1주년을 앞둔 10일에야 비로소 국회 국토교통위원회를 통과했다.
개정안에는 현재 사조위 상임·비상임 위원의 임기를 종료하는 내용이 담겼다. 하지만 독립성을 확보하기 위한 이 과정이 역설적으로 속도에는 제동을 걸게 됐다. 조사 기구 재편과 위원 재선임, 조사 내용에 대한 전면 재검토가 불가피해졌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당초 올해 말로 예상됐던 최종 사고 원인 결과 발표는 내년 하반기 이후로 밀리게 됐다.
사고로 부모를 잃은 박근우 씨(23)는 “유족들이 원하는 건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 두 가지인데 그 길이 이렇게 멀고 험한 줄 몰랐다”며 “독립된 조사 기구에서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놓고 조사할 수 있길 바란다”고 했다.
한편 무안공항 참사 발생 1년이 지났지만 인천국제공항을 포함한 주요 공항들이 대형 사고를 유발할 수 있는 활주로 내 위험 시설물을 여전히 방치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무안공항을 포함한 전국 5개 공항도 항공기와 충돌할 경우 대형 참사로 이어질 수 있는 방위각 시설(로컬라이저) 구조물 개선 공사를 완료하지 못한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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